◇<혹성탈출2> 포스터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올해 외화 중 최대 기대작으로 꼽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이하 <혹성2>)가 한국 영화 시장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당초 오는 16일로 개봉일을 잡았던 <혹성2>의 직배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10일로 개봉일을 앞당겼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이를 두고 한국 영화계는 "명백한 반칙"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7일 언론배급시사회를 열고, 변경일인 10일 개봉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심의가 예상보다 일찍 나왔다. 변칙개봉이 아니다"라며 "한국영화는 그런 적 없냐"고 반문했다.
'평화는 깨졌다'는 <혹성2>의 홍보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물론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굳이 영화의 제목을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영화들이 전야개봉이라는 이유로 하루에서 이틀 앞당겨 영화를 개봉하고 있다. 이 역시도 문제의 소지가 있으나 <혹성2>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축구로 치자면 앞선 영화들은 상대 선수의 유니폼을 잡고 넘어뜨리는 것이라면 <혹성2>는 명백한 백태클이라 볼 수 있다. 같은 반칙이라도 카드 색깔이 달라진다.
개봉을 열흘 앞둔 상황에 이 같은 변경은 애초 <혹성2>를 피해 개봉일을 잡은 영화들에 고스란히 손해를 끼친다. 이 때문에 10일 개봉을 할 예정이었던 <좋은친구들>, <소녀무덤>, 외화 <사보타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혹성2>가 개봉을 당기면 스크린 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마케팅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콘텐츠 다음으로 스크린 싸움"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스크린 수를 받는 것이 흥행에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영화가 좋지 않더라도 많이 걸면 많이 본다는 개념이다. 할리우드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혹성2>가 엄청난 수의 스크린을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일주일 흥행을 노렸던 두 영화는 이제 그 마저도 쉽지 않게 됐다. 애초 10일 개봉을 염두하고 짜놓은 보도자료 배포 및 배우와 감독 인터뷰도 <혹성2>의 이슈에 밀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좋은친구들>이나 <소녀괴담> 입장에서 아무런 제스쳐를 취할 수 없다는데 있다. 제도적으로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껏 해야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혹성2>를 비난하는 방법 밖에 없다.
<좋은 친구들>의 공동제작사인 오퍼스픽쳐스의 백지선 PD는 "<혹성2>의 개봉일 변경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그렇지만 제도적으로 준비된 것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배려가 너무 없는 처사라고 생각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소녀괴담>이나 <사보타지>도 다를 바 없는 위치다.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이다. 이 문제가 공론화가 되서 이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혹성2>로 발생한 피해는 10일 개봉하는 영화들이 짊어져야 한다. 거대한 돈 앞에 무기력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혹성2>를 향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야 하고, 국내 영화계도 심각하게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혹성2>가 유야무야 넘어가면 국내 영화들 중에서도 이를 빌미로 대규모 자금을 이용한 반칙개봉이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적은 돈이 투입된 작은 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 애지중지 공들여 만든 노력들이 더 큰 돈 앞에서 농락당하게 된다. 비록 이번엔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영화계는 좋은 영화가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굴지의 대기업 영화 뿐 아니라 작은 영화사의 영화도 관객 앞에서 제대로 얼굴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음부터는 작은 영화들이 큰 돈 앞에서 눈 뜨고 코 베이는 경우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백 PD의 차분한 말 속에서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이 국내 영화인 모두의 한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