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현장 스틸 (사진제공=JTBC)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부모는 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이 있어야 돼요. 15살짜리 애가 무슨 생각이 있어요. 독립한다는 애를 그냥 내보내면 그건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이 한 말이 아니다. JTBC 새 예능 <비정상회담>에서 터키 대표로 출연한 에네스 카야가 꺼낸 말이다. 외국 출신으로 한국 문화에 익숙한 11개국 청년들을 패널로 섭외한 <비정상회담>은 첫 방송부터 다양한 볼거리와 치열한 토론을 보여줬다.
36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비롯해 매형과 누나 조카 3명과 함께 살고 있는 장동민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날 대화는 각 11개국의 미남 대표들에 의해 진지하게 진행됐다.
진행자로 나선 전현무와 성시경, 유세윤은 방송 초반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런 뒤 가나의 샘 오취리, 캐나다의 기욤 패트리, 영국의 제임스 후퍼, 터키의 에네스 카야, 벨기에의 줄리안 퀸타르트,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몬디, 중국의 장위안, 미국의 타일러 라쉬, 프랑스의 로빈 데이아나, 일본의 데라다 타쿠야, 호주의 다니엘 스눅스 등 11명의 이방인들을 소개했다.
마치 예전의 KBS2 <미녀들의 수다>의 남성판으로 보였다. 각국의 남성들의 출중한 외모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미녀들의 수다>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당시 외국의 미녀들이 자신의 생각을 전하면서 국내 남녀 패널들과 의견 대립을 보였다면, 이번에는 한국인의 행동을 두고 각국의 대표 청년들이 치열하게 다퉜다. 보수적인 패널이 있으면, 개방적인 패널도 있었다. 이들의 설전은 기존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대목이라 흥미롭고 신선했다.
방송 초반 장동민의 일상에 깜짝 놀란 11개국 청년들은 '언제 독립했는지'로 대화의 주제를 옮겨갔고, 다니엘 스눅스가 15살에 독립한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니엘 스눅스가 어릴 적 방황했던 시기, 다소 철없게 독립했던 이야기를 꺼내놓자 에네스 카야는 "부모님이 무책임한 것"이라며 일갈해, 토론의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었던 건 유럽의 청년들은 꽤나 이른 나이에 독립을 한다는 사실이고,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데 있었다. 그들은 이에 대해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도 엿볼 수 있었다. 반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 다수의 청년들이 여전히 부모들의 도움을 받고 평균 27세에 독립을 한다는 사실도 흥미를 모았다.
가나를 대표한 샘 오취리는 유럽인보다도 더욱 개방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부모가 내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은 절대 불가라는 의견을 내놓는 그의 모습에서 아프리카의 또다른 문화를 알 수 있었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패널 로빈 데이아나-줄리안 퀸타르트-제임스 후퍼(위 왼쪽부터), 알베르토 몬디-장위안-샘 오취리(아래 왼쪽부터) (사진제공=JTBC)
주제는 단순했지만, 토론의 내용은 포괄적이었다. 마치 <마녀사냥>이 하나의 사연을 가지고 깊이있게 주제를 확장시키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인생에 대한 여러나라 사람들의 가치관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장동민이 독립을 못한 것이 아니라 경제권을 가진 장동민에게 가족이 의존하는 것"이라는 에네스 카야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방적인 발언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장위안은 "단지 자유를 위해서만 독립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며 보수적인 시각을 강하게 드러냈다.
독립에 대한 이야기는 결혼으로 이어졌고, '부모님이 반대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냐'는 질문이 나왔다. 대부분은 결혼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에네스 카야와 장위안, 타일러 러쉬 등은 가족과의 관계를 내세우며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각국에 있는 부모에게 모국어로 영상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청년들의 모습은, 피부색과 생김새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되새겨 주는 장면이었다.
◇전현무-유세윤-성시경 (사진제공=JTBC)
다소 산만한 점은 아쉬웠다. 11명의 외국인들이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세 MC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패널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다보니 오디오는 마구 섞였고, 무슨 말을 하는지 자막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치달았다.
각국 청년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진지하게 토의하는 자리가 된 <비정상회담>은 <미녀들의 수다>에 비해 대화의 품격이 높았다. JTBC가 새롭게 내놓은 2014년 판 '미남들의 수다'는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