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피아니스트 (사진제공=보령기획)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2시간이 넘게 진행된 인터뷰다. 피아니스트 김철웅의 삶 자체가 워낙 독특하고 스토리가 다양해 흥미진진했다. 아울러서 그가 바라본 남·북한의 차이도 재밌는 구석이 꽤 많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들었다. 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면 다른 이야기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가 바라본 남한과 북한은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더욱 많았다. 남한과 다를바 없는 북한의 치열한 경쟁시스템이 그렇고 북에서의 연애도 남쪽과 큰 차이가 없었다. '권력이 있으면 돈이 따라온다'는 것도 남북은 다르지 않았다.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하는 한국과 자원 입대하는 북한, 하지만 군 복무율은 북이 더 높다는 점은 어디서도 듣지 못한 대목이었다. 결국 사람사는 데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처한 상황이 다를 뿐이다.
"'다름'에 대해서는 알만큼 알았다. 이제는 '같음'을 얘기해야 하는 시기"라며 각종 방송에도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 김철웅이 바라본 남북한의 차이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봤다.
◇"북한은 더욱 치열한 경쟁에서 싸운다"
최근 한국에서는 '경쟁 없는 교육'이 화두다. 더 좋은 과외, 더 좋은 대학에 지친 사람들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남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학문과 전공을 택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북한은 다르다. 나라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기 때문에 나라가 개인을 선택한다. 김철웅도 나라에서 정한 경쟁시스템에서 생존한 사람이다. 평양음악무용대학에 670대1이라는 경쟁율로 합격했다. 그 때 나이 8살이었다.
"북한의 경쟁이 우리나라보다 더 강할 수 밖에 없죠. 우리나라는 분야가 다양하잖아요. 경쟁이 치열하긴 하지만 그건 최고라는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고, 대학도 가려고 하면 가잖아요. 진입장벽이 낮은 곳은 경쟁이 세지 않아요. 하지만 북한은 노동당에 가입하는 것만이 유일한 승진의 길이에요. 그곳은 그 어떤 나라보다 경쟁이 치열해요."
사실 맞는 말이다. 한국의 모든 분야가 경쟁이 심하지 않다. 소위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나 안정적인 공무원, 대기업 등이 경쟁이 치열하다. 모든 직업의 경쟁이 치열한 것은 아니다. 다만 경쟁이 평생 이어진다.
"북한은 노동당에서 성공해서 기득권이 되면 최소 20~30년은 해먹어요. 지금 북한의 고위층이 누군데. 다 김정일 밑에 있던 사람들이에요. 기득권이 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해요. 한국은 정치하다가 돈 조금 받아먹은 거 걸려봐요. 바로 청문회다 뭐다 해서 엄청 털리잖아. 북한은 그런 거 절대 없어요. 한 번 되면 20~30년이에요."
◇"군대 가기 싫어하는 남한, 군대 가고 싶어하는 북한"
놀랐던 점은 북한의 모든 사람들이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국민들이 군대에 동원될 줄 알았다. 잘못 알고 있었다. 북한 사람들은 군대를 자원입대한다.
"그런데 여기(한국)보다 군대갈 확률이 높아요."
그는 북한의 군대를 한국의 대학과 비교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안정적인 생활을 이루기 쉽지 않듯, 북한은 군대에 나오지 않으면 소위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군대 안 갔다 왔다고 해서 사회생활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시선이 안 좋기는 하지만, 능력있으면 그만이잖아요. 대신 대학을 못 나오면 갈 기업이 줄어드는 거지. 북한에서 군대를 가지 못한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뭔가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저 농장에 배치되서 평생 농사만 짓다가 나라에서 주는 배급만 먹고 사는 거예요. 군대를 가지 못하면 평생 승진이 없는 삶을 사는 거예요."
여기서 출신성분이 군대에 갈 수 있는지와 없는지를 구분한다. 그가 말한 A~C계급(이는 앞선 인터뷰에서 김철웅씨가 밝힌 암묵적인 계급이다)은 군대에 갈 수 있다. D계급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군대에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 E~F계급은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그 계급의 사람들을 군대에 보냈다가 그들이 무슨 짓을 할 줄 알아요. 절대 못 보내지."
북한 사람들이 군대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노동당에 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D계급의 사람들은 10년 간의 군 복무 이후 어떻게든 당원이 되려고 노력한다. 당원이 비당원보다 혜택이 많고 사회적인 대우를 받는다. 우리나라 기업의 팀장이라도 하려면 당원이 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이 있다.
"당원의 자격은 10년 간의 군생활에서 결정나요. 10년 가까이 에이스로서 살아야 당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그게 쉬운일이에요? 어렵지. 그런데 A급 출신성분의 자제들은 2~3년 하면 당원이 돼요. 그러면 바로 대학에 갑니다. 그게 간부 코스예요. 실력이 있든 없든 그렇게 자기들끼리 다 해먹어요. 아주 철저한 계급사회지."
2014년에도 그런 사회가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김철웅 피아니스트 (사진제공=보령기획)
◇남남북녀..연애와 결혼
그는 북한 고위층 자제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일성과 전쟁을 같이 치룬 특A급 노동당 간부였고, 어머니는 명문대 국문과 교수다. 친구 중에는 장성택의 조카가 있고, 노동당 총리의 조카, 조총련 회장의 자제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노동당 간부들의 자제들이 그의 동창생이다.
집에 차는 벤츠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옷도 입고 다녔고, 피자도 잘 먹었다. 자유의 제약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장성택의 조카와 결혼할 뻔 했다.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뒤 동창회에서 만났다. 술집이었다고 한다. 술집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했다.
"그냥 다 있어요. 여기랑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봐도 돼요. 규모나 크기에서 차이는 있지만, 있을 건 다 있어요. 일반인들에게도 다 공개해요. 다만 돈이 없어서 술집을 못 가는 것이지. 돈은 외화를 내야 해요. 그런데 권력이 있으면 돈은 알아서 따라와요."
모텔도 있냐고 물어봤다. 과연 그들은 젊음의 뜨거운 욕망을 어떻게 해결하는 지 궁금했다.
"모텔은 없어요. 호텔 같은 곳도 출장이 아니면 이용하지 못해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고 하잖아요. 북에는 출신성분은 좋지 않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별장처럼 집을 잘 꾸며 놓아요. 그럼 우리 같은 권력자의 자제들이 파티 같은 걸 하고 싶으면 그 사람들한테 부탁해요. 돈 좀 주고 그들의 자식이나 일을 좀 봐주고 그런거죠. 얼마든지 방법은 많아요."
남남북녀라고도 한다. 남자는 남쪽이 여자는 북쪽이 예쁘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럴까.
"우리나라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성형을 해서 자연 미인은 적은 거 같아요. 북에는 원조 자연미인들은 확실히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여자들이 성격이 더 세요. 겉으로 보면 우리나라 여자들보다 더 세요. 그런데 아직도 거긴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해서 남자말이면 굽신대는 게 있죠. 그래서 탈북한 여성들 중에 한국 남자들과 많이 살아요."
그렇다면 남자는 어떨까. 북에서 사랑에 실패한 김씨는 한국으로 넘어와 소개팅을 통해 결혼에 골인했다. 김씨의 부인은 외교관이다. 한국에서 본 여성 중 가장 부드럽고 온순하고 착해보여 마음을 줬다는 게 김씨의 이야기다.
"나 같이 변하지 않으면 북한 남자들은 한국 여자와 결혼해서 살기 힘들어요. 결혼할 확률이 적죠. 남자들은 가부장적이거든. 여기서 한국 여자와 살려면 '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에요. 그래야 편해요. 그런데 아직 북한 남자들은 가부장적인 거에 익숙해요. 여기는 돈 많은 남자들도 여자한테 잘하는데, 한국여자들이 북한 남자를 좋아하겠어요?"
◇"문화가 유입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북한"
북한은 문화가 유입되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한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이 때문에 금지곡도 상당히 많다. 1970~80년대에 군정부에서 지정한 서적이나 음악을 금지시킨 것과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고 한다.
김씨도 그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다. 청혼을 위해 금지곡이었던 프랑스 팝을 준비하던 중에 고위층이 알게 됐고 이게 문제가 돼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소련이 무너진 이유를 분석한게 음악을 비롯한 문화가 유입되서 일반인들의 정신이 망가졌기 때문으로 봐요. 물론 그게 맞을 수도 있죠. 음악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거든요. 이 때문에 금지곡이 엄청나게 많죠."
대북 관광산업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북의 기득권층은 한국의 일반인들과 북한의 일반인들의 만남을 엄청나게 두려워한다고 한다. 김씨는 기득권층이 한국의 관광객들의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을 막으려다 관광산업이 망한 것으로 봤다.
"금강산 쪽에 땅이 엄청나게 커요. 숙박시설이랑 관광지랑 거리가 엄청나요. 그것 때문에 기업에서 택시 10대만 넣자고 했어요. 북한은 절대 안된다고 했지. 택시가 문제가 아니라 택시 기사들 때문이었어요. 택시 기사들이 길을 모르니까 아무데나 다닐거 아니에요. 아무데나 안 간다고 한다 하더라도 우려가 있지. 그러다가 북한 사람들이랑 만나봐요. 북한 주민들은 분명 '우린 왜 저 사람들처럼 못 살지?'라는 생각을 할 거라고. 북 기득권층은 그게 두려운 거예요."
◇김철웅 피아니스트 (사진제공=보령기획)
◇"정치를 빼고, 아래부터 올라가야 통일이 된다"
아직도 남북한은 이념 차이가 크다. 특히 기득권층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불신한다.
누구보다도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 김철웅이다. 그의 가족은 아직도 북에 있다.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가족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괜히 마음이 아플까봐 가족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잘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어디갈까. 부모와 남동생을 12년 동안 못 봤고,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입장에 처한 그다.
"이산가족이 1000만인데 이들은 만나게 하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꼭 통합된 정부를 세울 필요는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여권 떼서 넘어갈 수 있고, 거기서 돈을 쓰고, 편지 교환하면 그게 통일이 된 거나 다름 없어요. 더 잘 사는 사람들이 거기 사람들 먹을 것 주고 도와주고 그럼 통일하지 말라고 해도 통일이 돼요."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처한 현실에 대한 분노 같기도 했다.
"국제전화로 통화비 비싸게 받으란 말이에요. 미국에도 보고 싶으면 전화하는데 안 하겠어요? 무조건 하지."
이야기는 햇볕정책으로 넘어갔다. 북에서 온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펼친 햇볕정책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원래 돈 많은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 주면서 그 힘을 이용하는 거잖아요. 주는 건 좋아요. 그런데 왜 기득권이 달라는 것만 주냐는 거죠. 멍청하게. 외투를 두껍게 껴입은 사람에게 햇빛을 줘서 이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게 그런 정책이잖아요. 그런데 외투를 더 두껍게 입는다면 그건 문제인 거지. 내 말은 기득권만이 원하는 먹을 것만 주는 게 아니라 가난한 주민들도 원하는 전기에너지를 주라는 말이에요. 전기는 기득권도 힘들어해요. 툭하면 정전이에요. 그리고 전기가 있으면 비료 공장이 돌아가서 주민들도 쌀을 더 먹을 수 있어요. 그럼 그 전기가 북한 것인줄 아냐.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준 건지 다 알아요. 드라마도 다 보는 판인데."
목소리는 더 커졌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느껴졌다.
"만약 북이 전기를 핵에 이용한다면 바로 끊으면 되죠. 당연히 줄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끊어버리면 쟤들도 당황해요. 그러면 그들을 이용할 수 있는 카드가 되는 거죠. 걔네는 안 받을 수가 없어요. 먹을 거리를 줬다는 건 정치가 개입되서 그런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내 생각을 아무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큰 이벤트를 원했던 거죠."
"북한이 지금 미친 짓을 엄청나게 하고 있어요. 김정은 전용비행기가 없어서 러시아에 달라고 했어요. 그게 280억이에요. 그래서 북한이 준게 금광을 줬어요. 금을 캘 능력이 없으니, 금광째로 줬어요. 그게 3조에요. 이게 제정신을 가진 정부가 할 짓입니까? 포스코 철광이 세계 최고라고 하죠. 그게 호주에서 배로 한 달동안 실어온 철을 가공하는 것이라 합니다. 근데 호주 철보다 6배가 북의 철광이 우리 나라 국민이 200년 쓸 수 있는 크기인데, 이걸 중국에게 50년 동안 임대를 해줬어요. 그 자원은 어쩌면 우리 것이잖아요. 이건 지켜야 하잖아요. 22~23세기를 살려면 서로 상생해야 돼요."
그는 오는 23일 <2014 평화콘서트>를 연다. 통일을 위한 노력의 첫 걸음이다. 밑에서 통일의 움직임이 먼저 이뤄져야 통일이 된다는 그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경제 교류를 하고 문화 교류를 하고, 아까 말한대로 서로 주민들이 오고 갈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됩니다. 정치가 들어가니까 풀리지 않는 거예요."
2시간 동안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북한의 리얼한 이야기들은 물론 그가 바라본 남북의 차이도 신기했다. 누구보다도 통일이 되길 기원하는 그의 마음이 엿보여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난 뒤 김철웅씨는 "다음에 소주 한 잔 합시다"라며 술잔을 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와 나는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보다는 '같음'을 더 많이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조만간 다시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