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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전환의 진정한 의미
입력 : 2015-05-28 오후 4:00:00
우리는 생명보다는 이윤, 협동과 화합보다는 적대와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다. 지식과 정보의 양은 많아졌지만 상식과 판단력은 부족하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참된 학교와 선생님은 드물다. 정치제도는 선진화되었지만 민(民)을 섬기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은 성장했지만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골은 깊어졌다. 문화산업의 발달로 오락거리는 많아졌지만 자살하는 이들은 더 늘어났다. 고속철도의 속도만큼 사라지는 논과 밭, 숲과 갯벌 그리고 뭇생명. 세상이 각박해서인지 삶과 의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서구이론에 대한 탐닉과 공허한 실천이 난무할 뿐이다.
 
전환은 남의 문제(남 탓)가 아니라 나는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라는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시대 문명의 전환은 새로운 정권의 창출로 정의되는 혁명이 아닌 공존과 만남의 세계, 새로운 삶의 공간을 통해 정의되는 변화여야 한다. 전환은 타자를 죽이고 존재를 망각시키는 온갖 욕망에서 벗어나 벌레 하나 풀하나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환은 ‘철두철미하게, 인간과 자연의 분리와 인간 소외를 가져온 근대 서양 철학과 사상’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전환’이 또 하나의 상품이 되는 시대에서 진정한 전환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길잡이가 있다. 원주사람, 좁쌀 한 알 고(故) 장일순 선생이다. 그는 “오늘날 과학이라는 게 전부 분석하고 쪼개고 비교해서 보는 건데, 우리는 통째로 봐야 한다. 쌀알도 우주의 큰 바탕이 없으면 생길 수가 없듯이 벌레 하나도 이 땅과 하늘과 공기와 모든 조건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전환의 전제는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물래(기계)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기는 것”이다. 여기서 ‘모시고 섬기’는 일은 여럿(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손잡고 협동하여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전환은 낮게 임하는 것이다. 장일순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며, 진실한 가슴과 실천으로 보여주는 감동”이라고 말한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나뉘고 고정된 것이 아니며 교육의 본질은 인간다운 삶을 함께 배우고 느끼는 의식과 실천의 공감” 즉, 교학상장(敎學相長)을 강조한다. 그는 전환의 삶으로 ‘개문류하(開門流下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가는 물)의 삶’, ‘물처럼 사는 삶’을 피력한다. 그것은 만물을 먹여 기르는 것,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것, 낮은 곳에 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뭇 사람(생명)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뜻이다.
 
전환은 비움에서 시작한다. “내 것을 만들려고 세게 당기면 내 것이 되지 않고 쏟아질 뿐”이다. 여기서 비움은 이분법적인 구별이 사라진 것, 전일적으로 세상을 보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의미한다. 그러나 장일순이 말하는 무소유가 곧 속세의 더러움을 피해 세속을 등지는 것은 아니다. 세속에 머물며 더러움을 없애는 방법, 자신의 소유에 얽매이지는 않으나 세상의 왜곡된 소유를 바로 세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정신과 물질 포함)들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협동하며 공생하는 방법이다. 무위는 유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가난한 시대에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공존공생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장일순은 “자동차, 아파트, 옷이니 하는 것은 없어도 불편하기는 하지만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물과 공기와 농사가 없어지면 인간들은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일순은 우리의 삶이 물질가치만 추구해서 경쟁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주고 함께 어울려서 정신적인 가치도 공유할 수 있는 생명공동체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모심’과 ‘합일(사람과 자연과 무한으로 합일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장일순의 삶이자, 사상의 핵심이었다.
 
장일순 선생이 남긴 전환의 뜻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닌 듯하다. 아주 사소한 생활 속에서부터 함께 일하고 더불어 나누며 서로를 모시는 일, 그것이 바로 전환의 요체이다. 세상 살기가 아무리 험악하고 먹고 살기가 아무리 척박해도 무차별 경쟁과 죽임이 아니라 자연과 나누고 사람과 함께 하면서 사람다운 삶의 터전을 조금씩 넓혀 가는 길이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을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우리 모두 잊고 산다.
 
이창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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