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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맛의 인문학)②대보름, 휘영청 밝힌 억겁의 전설 아래서 사랑을 나누다
입력 : 2016-02-18 오전 6:00:00
달은 그 억겁의 시간 동안 한 번도 지구에 등을 보인 적이 없다. 수십억 년 지구만을 바라본 ‘지구바라기’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은 한 달에 한 번 보름에만 보여주는 수줍고도 정숙한 존재이다. 달과 지구 사이 장엄한 사랑의 역사와 오곡밥의 본질이 나눔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가족, 가능하면 이웃과 오곡밥을 나누어 먹는 게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지난 회에 지구 자전축의 기울어짐을 지목하여, 만약 이 기울어짐이 없었다면 지구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를 잠깐 상상해 보았다. 우리 입장에서 한반도 기후가 좋아질지 모른다고 상상하였지만 이 기울어짐이 없었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좋아졌을 기후를 즐길 인류가 출현할 가능성이 기울어짐 없이는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한 조건 아래에서 복잡한 구조를 가진 고등생명체가 지구에 발현하지 않았으리라고 추정하는 게 현실적이다.
 
지구의 탄생기로 46억 년 가량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원시 태양계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다. 태양을 둘러싸고 수십 개의 불타는 행성이 공전하였고, 소행성과 운석이 난무한 혼돈 그 자체였다. 혼돈이 가라앉는 과정에서 태양계를 구성하는 거대 천체의 다수가 소멸하여 지금의 행성들만 남았다. 달은 그 카오스 속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남은 ‘행성’이다.
 
그렇다. 그때 달은 어엿한 행성이었다. 그러나 지구와 비슷한 궤도에서 태양을 돌고 있던 행성 상태의 달은, 자기파멸적 연모에 빠져든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이은상 작시의 우리 가곡 ‘그 집 앞’의 묘사 그대로, 행성으로 태양을 공전하던 달은 그동안 오며가며 스치던 원시 지구를 어느덧 연모하게 되고, 모든 지독한 사랑이 그렇듯이 연모를 통해 둘 중 하나는 스러질 운명임을 알게 된다. ‘행성’ 달은 지구 앞으로 되돌아 온 뒤, 차마 떠나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 서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지구를 향하여 격정적으로 돌진한 것이다. 지구와 달이 공존한 행성 궤도에서 운명대로 두 행성이 충돌한다. 그러나 신탁과 달리 둘 중 하나가 스러지거나, 또는 둘 다 스러지지 않았다. 두 행성 모두 살아남았다. 생사를 무릅쓴 달의 치명적 도박은,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사랑의 전설로 지금도 지구의 밤하늘을 환하게 비춘다.
 
다른 궤도의 많은 충돌과 달리 지구 궤도에서 일어난 충돌이 두 행성 모두 살아남는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 까닭은, 충돌 각도 때문이다. 천우신조라 할 충돌각으로 인해 비록 상당 부분의 질량을 지구에 넘겨주어 하얗게 야위었지만 달은 태양계 탄생 이후 지금까지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이자 아내로 한시도 지구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태양을 도는 행성에서 지구를 도는, 지구만을 도는 ‘위성’으로의 변모는 불가피했다. 달은 태양계 위성 중 공전하는 행성 대비 질량이 가장 무겁고 비중도 크다. 행성이었다가 위성으로 바뀐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행성과 지구로부터 달이라고 불리는 행성은 서로의 인력으로 꽁꽁 묶여 40억 년 이상을 ‘해로’하고 있다.
 
인간의 시간관념으론 감지조차 불가능한 그 오랜 옛날, 달과 지구 사이에서 일어난 격렬한 사랑의 증거가 지구 지축이다. 그때의 충돌로 지구 지축이 23.26도 기울어졌다. 지구에 사계절을 만들고 무엇보다 생명을 만든 게 달이다. 상대적으로 거대 위성인 달은 강력한 인력으로 조수간만을 만들어내 원시 지구에서 생명을 태동케 하였다. 태양으로도 조수간만이 일어나지만 조수(潮水) 드나듦의 그 정도 차이로는 생명발생이 어려웠을 터이다. 달은 하루도 빼지 않고 지구의 바닷물을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여 지구를 태양계에서 유일한 생명의 행성으로 거듭나게 하였다.
 
달은 충직하다. 이러한 ‘밀당’의 와중에 달은 지구를 공격하는 소행성이나 운석의 상당수를 자신의 몸으로 막았다. 밤하늘 달의 얼굴에 보이는 무수한 크레이터는 달이 지구를 보호한 흔적이다. 또한 달은 그 억겁의 시간 동안 한 번도 지구에 등을 보인 적이 없다. 수십억 년 지구만을 바라본 ‘지구바라기’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은 한 달에 한 번 보름에만 보여주는 수줍고도 정숙한 존재이다.
 
달과 지구의 격렬한 사랑
 
곧 정월 대보름이다. 동산 위에 둥그렇게 떠오를 음력 새해의 첫 보름달은, 정주하여 농사를 지은 우리 민족에게 큰 의미였다. 지구를 향한, 혹은 지구 위 생명체를 향한 달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알 리 없는 인간이지만 어쩌면 DNA 수준의 자각이었을까, 인류 또한 달을 경애하였다.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새해를 시작하는 설 또한 매우 중요한 날이지만, 불가피한 상황이라서 둘 중 하나만 쇠어야 한다면 보름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의 바탕은 농경문화이다. 설은 의례의 날이다. 가족과 함께 지내고 조상과 이웃에게 인사를 드린다. 반면 정월 대보름은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다. 대보름을 넘기면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 대보름에도 여전히 외지에 있다면 “(농사)철을 모르는 사람이요, 철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속담 하나로도 드러나듯 대보름은 고래로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였다. 중원(中元 : 음력 7월 15일, 백중), 하원(下元 : 음력 10월 15일)과 함께 대보름을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도가(道家)에서 비롯한 말로, 도교에서는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일 년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날을 ‘원(元)’이라 한다. 지구를 향해 달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 날 중에서 ‘원’을 고른 걸 보면 도가에서는 어쩌면 달의 엄청난 사랑의 전설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연간 200건에 육박하는 우리 세시풍속 중 대보름에 달집태우기 등 4분의1~5분의1이 몰려있는 데서도 이 절기의 중요도를 파악할 수 있다. 세시풍속도 풍속이지만, 대보름 하면 역시 오곡밥이다. 도시화하고 현대화한 요즘 쥐불놀이 같은 세시풍속이 행사용으로만 전승되는 반면 오곡밥은 아직까지 대다수 가정에서 먹는다.
 
대보름에 오곡밥을 먹는 의미
 
오곡밥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올라간다. 신라 21대 왕인 소지 마립간이 정월에 찰밥으로 까마귀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오곡밥이란 명칭은 홍석모(1781~1857)의 동국세시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찰밥과 별도로 ‘오곡잡밥(五穀雜飯)'으로 표기되었다.
 
정월대보름에 먹는 오곡밥과 나물. 사진/뉴시스
 
정월대보름날 오곡밥의 재료가 되는 오곡은 대체로 찹쌀, 팥, 수수, 콩, 차조 또는 기장이다. 지방에 따라 오곡이 달라지기도 하고 꼭 5종의 곡식이 포함되지 않은 오곡밥도 존재한다. 약밥은 오곡밥의 업그레이드 형태로 살림살이가 넉넉한 집에서 해먹었다고 한다.
 
오곡밥을 먹은 이유는 일 년 농사의 성공과 가족의 건강 및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곡은 오행사상에 입각한 모든 곡식이란 뜻이다. 모든 곡식을 다 먹으며, 모든 곡식의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제물로 활용했다는 해석이다. 정월 대보름엔 세 집 이상 남의 집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는 속설과 믿음은 정주 농경민이 구축할 수밖에 없었던 공동체 삶을 표상한다. 가난한 이웃들과도 밥을 나눈 대보름의 전통은 더불어 사는 농경 공동체 사회상의 단적인 예이다.
 
농경사회가 새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인 대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달에 강력한 여성성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태양(太陽)이 지구 위를 사는 모든 이에게 가장 강력한 양(陽)이라면, 달은 그 반대로 가장 강력한 음(陰)이다. 새해의 첫 보름달을 보며 농사의 성공을 기원한 풍습은 그 상징성으로 볼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모습은 달의 날인 대보름에 오곡이 오행을 구현하는데, 행성의 이름으로도 연결되는 이 오행, 즉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에 달이 빠져있다는 것. 한때 행성이었던 달이, 자신과 지구 사이 사랑의 산물인 인간이 현존의 다른 행성에게만 감사를 드리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인간의 관점에서 논한 이 모든 이야기가 안 그래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전도서)고 할 판에 농경사회가 쇠락하면서 대보름 풍습마저 사라지는 상황이니, 다가오는 대보름에 오곡밥을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달과 지구 사이 장엄한 사랑의 역사와 오곡밥의 본질이 나눔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가족, 가능하면 이웃과 오곡밥을 나누어 먹는 게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참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민속신앙사전)
 
안치용 토마토CSR연구소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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