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출신 초선 의원이 최근 대기업 중심의 국내 산업생태계를 동물원 구조로, 이와 달리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적 벤처기업들을 야생동물로 비유했다.
페이스북 창업주 주커버그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경력이 끝날 때 사회환원을 시작하는데 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그는 2010년 재산 과반을 기부하는 약속(The Giving Pledge)을 하고, 최근에 페이스북 지분 99%의 사회환원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미국에서, 그것도 재벌 그룹과 세계적 벤처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서 차지하는 사회적 공헌의 위상이나 사회적 환원이 갖는 의미는 다양한 편차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고용창출 등 경제적 책임, 투명한 회계 및 제조물의 안전성 등 법적 책임, 윤리경영 및 공정성 등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기부와 후원 등 자선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에 나설 때, 사회적 환원이든 사회적 공헌이든 제 의미를 갖는다고 여겨진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도 있지만, 기업이 번 돈으로 좋은 일에 기부하기에 앞서 돈을 버는 과정에서 법규를 지키고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우선임은 자명하다. 사람들이 사회적 공헌에 대한 논의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면, 대기업과 재벌총수들이 경제적·법적·윤리적 책임은 소홀하면서 ‘나눔 이벤트’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허상을 심으려고 한다는 의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위법한 행위로 사법처벌을 받거나 이를 전후해 사회적 비난에 직면해서 처벌이나 징계의 완화 혹은 사면을 염두에 두고 (어쩌면 그 댓가로) ‘사회적 환원’을 약속하면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과 같은 거래로 비쳐진다.
플리바게닝이 선의로 용납되는 것은 거악의 응징과 사회정의에 부합하거나 공익과 공공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때문이다. 재벌총수나 대기업이 악화된 여론에 직면해서 내놓는 사회적 약속도 비슷한 맥락에서 환영받는다.
이런 약속을 여유가 있으면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두 번 속이는 것과 같다. 사회통념상 ‘줬다가 뺏는 것’은 주지 않는 것만 못한 패덕으로,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가중처벌’ 대상으로 지탄받을 수 있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지난해 8·15 특별사면에 대거 포함돼 공공사업 입찰제한에서 해제됐다. 4대강·철도 등 대형공공사업에서 입찰담합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던 재벌 계열사들은 입찰참여 제한이 해제되자 수조원에 달하는 수주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특사 논란에 대응해 ‘건설산업 사회공헌재단’으로 2000억원을 조성하기로 약속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는 힐난을 받고 있다.
국내 카드사들도 2011년부터 소멸 포인트 수입에서 매년 200억원씩 5년간 1000억원을 조성해서 신용카드 채무 불이행자, 영세가맹점, 저소득층, 공익활동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8개 카드사는 기프트카드 낙전과 카드 포인트 소멸로 연평균 1000억원 가량 수입을 거두고 있지만 2011년 200억원 조성 이후 나머지 800억원은 감감무소식이다.
정체불명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케이스포츠재단이 순식간에 900억원 가량 모금하는 데서 나타난 재벌계열 대기업들의 발 빠른 조치는 사회적 환원에서 보이는 태도와 사뭇 다르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삼성특검’에서 임직원 486명 명의로 만든 1199개의 차명계좌에 4조5373억원(2007년 기준)이 밝혀지자, 상당한 금액(1조원 추정)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는 삼성가(家)의 명예를 건 사회적 약속이었다.
이 회장측은 기별이 없다가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청년희망펀드에 200억원을 기부했다. 이것이 그 약속의 일환인지도 분명치 않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 등기를 통해 책임경영의 전면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조치가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주주의 권리도 중요하고 외부 투자자의 권익도 존중돼야 하지만, 소비자 없이는 기업도 없다. 대기업과 오너 경영자들은 사회적 환원을 둘러싼 해묵은 잡음을 거둬들여야 할 책임이 크다.
김병규 2.1지속가능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