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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불공정한 시장, 개혁이 급하다
(문은숙의 소비자 이야기)1.제조사·판매자·정부가 합작한 부도덕한 시장
입력 : 2016-10-31 오전 8:00:00
오늘부터 문은숙 박사의 소비자 이야기연재를 시작합니다. 문 박사는 서울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으로, 국제표준화기구(ISO) 소비자정책위원회 제품안전의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식품안전정보원 초대 원장, 세계보건기구(WHO) 자문관, 국무총리실 식품안전정책위원회 전문위원, ()소비자와함께 식품안전위원장,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처장 등을 지냈으며 중앙대학교와 성균관대학의 관련 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비자시민운동가이자 소비자정책 전문가입니다. 문 박사의 소비자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편집자]
 
최근 1, 2년 뉴스를 떠들썩하게 차지했던 가짜 백수오 건강기능식품과 오픈마켓 기만광고 사건. 소비자를 기만한 업체들은 응당한 처벌을 받았을까?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았을까? 가짜 백수오를 만들었던 내츄럴엔도텍은 검찰로부터 고의성이 없어 보인다며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옥션, G마켓, 11번가 등 오픈마켓 사업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00만원에 그치는 과태료 처분을 받는 것으로 조용히끝났다. 생명까지 앗아간 가습기살균제를 버젓이 광고하며 팔았던 기업들에게조차 아직 배상을 못 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오늘도 외롭고 힘겨운 거리 시위를 하고 있는 마당인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분명한 소비자피해를 두고도 기업에게 고의과실 책임만을 묻는 현행 법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소비자피해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내용 없이 허울뿐인 사전예방원칙을 내걸고 있는 안전정책이 바뀌지 않은 한 소비자안전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를 경제주체가 아닌 소비 진작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기업 중심의 정부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억울한 소비자피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고의성 없다며 제조사에 무혐의, 남는 건 소비자 피해 뿐
가짜 백수오 건강기능식품을 제조한 기업은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일부 홈쇼핑판매업체에만 거짓광고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났다.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허가받지 않은 이엽우피소가 비싼 백수오로 둔갑해 팔렸고, 누군가가 고의로 이엽우피소를 백수로로 둔갑시켜 부당한 이익을 챙긴 것이다.
 
그런데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약처와 고의로 혼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검찰의 합작으로 가짜 백수오 제조사의 소비자 배상 책임은 사라지게 되었다. 제품을 가지고 있던 일부 소비자는 판매업체로부터 환불을 받았지만, 가짜를 이미 먹은 소비자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백수오 시장은 자그마치 약 3000억원 규모였다고 한다. 백수오제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무너지면서 백수오를 성실히 재배해 온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20여만원 넘는 가격에 가짜 백수오를 먹은 소비자는 많은데 가짜 백수오를 만든 기업은 책임지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은 가해자 없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몇천억대 매출 올린 기만광고에 1천만원 과태료
국내 시장점유율 1, 2, 3, 4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옥션, G마켓, 11번가, 인터파크는 입점사업자 광고상품을 판매량과 품질이 우수한 인기상품인 것처럼 상품랭킹 상위에 올려놓고 소비자를 기만하다 적발되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오픈마켓은 이런 광고로 지난해 2835억원 매출을 올리고, 페이지 상단 노출 등의 부가서비스 제공 명목으로 122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 3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들 오픈마켓에 부과한 과태료는 총 2600만원이었다. 이 베이코리아(G마켓, 옥션)3회 관련법을 위반하여 과태료 최고상한인 1000만원을 부과 받았고, SK플래닛(11번가)과 인터파크는 각각 2회 위반으로 800만원씩을 부과 받았다. 기만광고로 올린 매출은 몇 천억원에 달하는데, 관련법을 여러 차례 위반하고 부과 받은 과태료는 1000만원에 불과한 것이다. 기만광고에 속아서 제품을 산 수없이 많은 소비자들은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소비자피해 규모 줄이려는 기업과 이를 돕는 정부
생명과 건강을 빼앗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아직도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여 독성물질에 노출된 모든 소비자를 포함한다. 독성제품을 사용한 모든 소비자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고, 기업에게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현재 피해자가족들이 피해자 범위를 좁혀 해당 기업과 협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생명을 잃거나 심각한 질환자가 되어버린 다급한 피해자들을 우선 구제하려는 절제된 노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정부는 피해자 범위를 줄이고 줄였고, 법은 그나마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피해 규모를 적극적으로 밝혀야 할 기업들은 무능한 정부 뒤로 숨고 있다. 피해가 심각한 신고자들을 비합리적인 등급으로 나누고, 일부 등급은 배상에서 제외하려 하고 있다. 독성물질에 노출되었던 많은 소비자들의 피해보상은 고사하고 생명을 잃거나 잃어가는 피해자만이라도 구제해달라고 도리어 애원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공정함에서 비롯된다.
소비자보호와 내수시장 활력을 위해 유럽연합이 내건 소비자정책의 목표는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 회복이다. 중국소비자들이 가격이 몇 배 비싼 우리나라 제품을 구입하고,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서울에서 쇼핑하는 이유는 중국 시장보다 우리나라 시장이 공정하다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안전, 품질, 적정가격, 편리함, 가치 등의 소비자편익이 아직까지는 중국보다 낫다는 신뢰이다. 그러나 중국 시장이 투명해지고 공정해질수록 중국 소비자들은 발길을 자국 내로 돌릴 것이다. 한국은 잠시 머무르는 시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시장은 이미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대기업들이 벌이는 부당가격, 기만광고, 허위표시, 안전사고, 불공정계약이 허다한데다 정부가 피해 입은 소비자 편에 서지 않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기업행위에 대한 처벌의 목적은 재발 방지이며 적절한 소비자 피해보상이다. 그러나 그 처벌이 과태료 몇 푼 내면 그만이다보니 재발을 장려하는 꼴이 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에게 국가나 국경이 무의미하다. 이는 소비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를 찾고 젊은 층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는 이유는 병행수입제한이나 재판매가격유지 등의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수입가격구조 탓이었다. 세계시장을 스마트폰에 담고 살게 된 디지털소비자들은 신뢰할 수 없는 국내시장에 점점 더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재발 방지 효과가 없는 정부의 불공정행위 처벌 관행, 피해자는 많은데 가해자는 없는 불공정한 시장에 방치된 소비자. 소비자 신뢰는 멀어져만 간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실태 발표 및 국정조사 특위 재구성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은숙 서울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
편집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회(www.ksrn.org)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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