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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드러내야 할 우리의 본색
입력 : 2016-10-31 오전 8:00:00
단풍이 한창이다. 설악을 거친 단풍이 북한산에 이르렀고 계속 남하 중이며 산이란 산마다 화사한 옷차림의 단풍객들로 부산하다. 시인 김승동은 단풍을 이렇게 노래했다.
 
옷을 벗는 것이다 / 푸르고 단정하던 껍데기를 / 벗어 던지는 것이다 훌훌 옷을 벗는 것이다 저렇게 / 벗어 던지면 더 아름다운 것을 / 기어이 보여주는 것이다 ('단풍나무' 중에서)
 
단풍은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단풍의 아름다운 색은 본래 있던 색이 가을을 맞아 드러난 것이다. 봄여름을 나면서 식물에게 쌓인 노폐물과 여러 성분이 잎에 맺힌다. 잎의 수분이 점점 줄어들어 광합성이 멈추면 엽록소라는 겉옷에 가려진 여러 성분이 본색을 드러내는데 이를 단풍이라 한다. 안토시아닌(anthocyanin. 붉은색), 카로틴(carotene. 황적색), 크산토필(xanthophyll. 노란색), 타닌(tannin. 회갈색) 등이 보조색소가 그것이다.
 
올해 첫 단풍은 최근 10년에 비해 3~8일 늦었는데 이제는 상식이 된 기후변화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계속 배출하면 단풍수인 온대성 낙엽수가 사라지고 내내 푸른 아열대성 나무만 번성하게 된다. 아열대성 나무는 소나무까지 북방으로 밀어내므로 결국 단풍도 소나무의 기상도 사라지고 단색의 단조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환경변화 외에도 국제질서의 변화를 초래하고 국가 간 분쟁의 위험을 내포하기에 세계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결과 114일이면 파리협약(신기후체제)이 공식 발효된다. 전세계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종식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성화하며 그와 관련된 산업으로 미래경제구도를 재편하자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빠르게 변해갈 것이다.
 
기후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국가는 파리협약 준수에 충실하고, 기업은 사회책임(CSR)을 다하며, 금융권의 사회책임투자(SRI)가 동반되어야 한다. 더불어 국민 개개인도 나와는 무관하다는 고립적 이기심에서 벗어나 사회책임을 실천해야 한다.
 
앞서 단풍의 아름다움을 말했지만, 숨겨진 본색의 아름다움이 비단 나무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이타적인 본색을 내재하고 있다. 새뮤얼 보울스와 허버트 긴티스는 인간이 이타적 협력을 선호하는 사회적 존재라고 공동저서인 '협력하는 종(A Cooperative Species)'에서 밝혔다. 인류는 종국적으로 타인을 고려하고 협력하는 존재인데, 이는 원시인류가 처한 환경적 재앙과 다른 집단과의 갈등에서 생존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 한다. 이타적 협력에 대한 의무감과 기쁨은 새로운 사회환경을 창출하고 상호이익을 형성한다. 그렇다. 인간은 개별적 독립체이기에 이기적 본색이 전면에 배치되지만 이타적 협력은 인간의 잠재된 본색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 본색을 드러낼 때이다. 협력으로 사회책임을 구체화할 때이다.
 
사회책임은 언제든 일상에서 가능하다. 가령 등산복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그 기업이 기후변화를 맞아 사회를 위해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를 비교하여 선택한다면 '사회책임소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금융기관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선택할 수 있다면 '사회책임투자'에 일조하는 것이다. 분리수거, 화학제품 안 쓰기 등도 좋은 선택이며 우리의 이 작은 수고가 세상을 바꾸는 기저로 작동할 것이다.
 
이제 곧 단풍은 아름다운 기억을 우리에게 남긴 채 노폐물과 함께 떨어져 거름이 될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식물의 체내 수분이 줄자 수분의 농도를 높여 얼지 않고 생존하려는 본능이다. 우리의 이타적 협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기심이라는 옷을 아낌없이 벗으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아름다운 이타적 협력이 솟아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 수 있다.
 
시로 마무리를 대신하며, 단풍보다 더 형형색색 아름다운 저마다의 본색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버려야 할 것이 /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제 삶의 이유였던 것 / 제 몸의 전부였던 것 /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방하착(放下着) / 제가 키워 온, /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 가장 황홀한 빛깔로 /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 '단풍 드는 날' 전문)
 
송상훈 푸른아시아 지속가능발전정책실 전문위원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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