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80% 가량이 지지하고, 지난 9일 국회의원 80% 가량이 찬성함으로써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돼 이제 헌법재판소의 인용결정만 남았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에는 삼성·SK·롯데 등이 제3자(최순실, 재단 등)를 통해 ‘대가성 뇌물공여’를 했다고 추단할 수 있는 대목들이 등장하고, 여기서 ‘전경련’이 뇌물수수의 행동대로 활약한 점이 드러난다.
한때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삼성합병에 반대의견을 제출한 국민연금 자문기관에 대한 모종의 협박설이 나돌았다. 최순실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이 국정농단의 한 축이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민연금 의사결정에서 삼성그룹과 최순실 등이 개입한 의혹은 향후 특검수사에서 철저히 밝혀야 할 국가적 사안이다.
재벌기업과 전경련은 미르·K스포츠에 자율적으로 출연했다고 주장하다가 ‘제3자 뇌물수수’이 거론되자 ‘강제모금’과 ‘대가성 부재’를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청문회 에서 적극 호응과 대가성이 의심되는 정황이 재확인됐고,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거간꾼’이라는 비판이 확산됐다.
소추의결서에도 “전경련이 9개 그룹의 분배금액을 조정하여 확정했다”는 대목과 함께 두 재단의 모금규모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적시돼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박영수 특검팀이 전경련 관계자들을 제3자 뇌물수수의 공동정범이든 종범이든 간에 엄정수사해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경련은 “재단법인 미르의 기본재산과 보통재산 비율을 9:1에서 2:8로 조정하라”는 부당한 압력에 이의제기도 못하고, SK하이닉스의 날인이 누락되자 기일을 지키려는 과잉충성심으로 세종시 공무원을 서울로 불러내는 국정농단까지 저질렀다.
전경련이 방대한 상근조직을 갖고 있음에도 황당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걸러 내기는커녕 ‘행동대장’처럼 앞장섰다. 16개 그룹이 거액을 냈지만 재단 설립 및 사업계획을 검토할 기회조차 전경련이 나서 봉쇄하고 박탈한 것은 건전한 기업활동을 파괴한 것이다.
전경련은 30년 전에 ‘일해재단’ 모금을 주도했고, ‘노태우 대선 비자금’, ‘세풍사건’, ‘차떼기’ 등에 이르기까지 ‘정경유착의 산실’이었다. 최근에는 기업이 낸 돈을 ‘어버이연합’에 지원한 것으로 드러나 커다란 물의를 빚었다.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박근혜정부의 축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경련과 재벌기업들은 나라가 이런 지경에 이르기까지 미르·K스포츠사건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재벌중심 대기업체제의 폐단은 소유지배구조의 족벌체제, 시장독과점의 불공정 및 부당이익, 소비자에 대한 기만 등으로 특징된다. 청문회장에서 전경련 해산에 동의했던 SK와 CJ가 하루만에 태도를 바꾼 것도 ‘체질화된 기만성’의 발로이다.
‘도덕불감증’, ‘책임불감증’에 걸린 전경련을 개선해 보겠다는 재벌총수들의 발언은 ‘세련된 정경유착’ 방안을 개발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전경련이 경제인과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는 상당한 규모의 재벌과 총수일가를 위해 활동해 왔고, 그마저도 이번 사태에서는 지키지 못했다. ‘부도덕한 권력’의 시종이 돼 노년의 재벌총수들을 다시 감옥으로 모시는 안내자로 전락했다.
전경련의 흑역사는 방대하다. 반면에 수많은 혁신의 기회를 살린 역사는 거의 없다. 이는 재벌기업과 총수일가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존재기반에서 비롯된 정체성 때문이다.
자기정화가 불가능한 조직에 대해 정화와 혁신을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지금은 회원사들이 스스로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탄핵하고, 재벌총수들이 전경련 해산에 앞장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정성을 입증해야 할 시점이다.
김병규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