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의 파리협약이 발효됐다. 파리협약은 2020년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며,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최대 95%까지 탄소 배출을 감축함으로써 탄소배출량과 흡수량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도 발 빠른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능력, 즉 저탄소 경영 능력이 주요 경쟁력으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 대출 등을 통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기관도 기후변화 이슈와 같은 환경정보를 고려하는 추세다. 전통적 측면의 재무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비재무적 리스크까지 효율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지침 역시 활발하게 제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기업의 비재무적 측면을 재무적 측면과 동시에 고려해 투자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것을 사회책임투자라고 한다.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금융권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기업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기업의 기후변화대응을 촉진하는 ‘녹색금융’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기후환경규제와 산업·금융의 변화’ 국제공동세미나가 열렸다. 국회예산정책처와 유엔환경프로그램 금융이니셔티브, 국회CSR정책연구포럼, 국회SRI정책연구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국회CSR정책연구포럼에 새누리당 홍일표, 국회SRI정책연구포럼의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 등이 패널로 참석하여 제도의 개정 및 공적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전 세계의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연기금, 자산운용사, ESG 분석기관 등 1570여개의 금융투자기관들이 책임투자원칙(PRI)에 가입해 사회책임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책임투자원칙의 자산운용규모는 62조 달러에 이른다. 금융기관 주도의 환경 관련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CDP에는 827개 금융기관이 가입되어 있고, 자산운용규모는 전 세계 운용 금융자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0조 달러에 이른다. CDP의 탄소행동(Carbon Action)에 가입한 금융기관들은 온실가스 초과 배출 기업에게 실질적인 감축을 요구하는 기업관여(Engagement)를 전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역시 국제 사회의 변화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사회책임투자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갈 길이 먼 한국의 사회책임투자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책임투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사회책임투자 개념이 도입된 지 15년이 넘었으나 규모나 인식 수준은 아직 초보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금융기관이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활동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운영되고 있으나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보긴 어렵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2015년 말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사회책임 규모도 7조 8651억 원이다. 이는 글로벌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체 사회책임 규모에서 공적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89.76%다. 공적연기금 중에서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만이 기금의 일부를 사회책임투자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공적연기금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연금에서 전체 운용기금 대비 사회책임투자 비중은 1.33%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책임 규모에서 공적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지만 공적연기금에서 사회책임투자 비중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것이다.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
2014년 4월 15일, EU 의회에서는 500인 이상을 고용한 기업 및 그룹에 대해 환경, 인권, 반부패 등 CSR 관련 계획과 정책, 성과 등을 의무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7년부터 해당 기업들은 이를 반영하는 보고서를 내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속가능보고서를 의무화하지 않았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보고서는 사업보고서다. 현행법상으론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배출권거래제에 포함된 기업에 한해서 사업보고서에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녹색기술 인증사항 등 일부 환경 정보만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한다. 이외의 환경 관련 비재무적 정보의 공시는 기업의 자율로 되어 있다.
지난 8월 1일, 상장법인의 사업보고서에 회사의 환경 보호 및 인권신장, 부패방지, 안전경영, 육아휴직, 어린이집 설치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자본시장법)이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되었다. 개정안은 사업보고서에 ESG 핵심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해 보완적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개정 법안에는 ‘환경보호를 위한 계획 수립과 실행에 관한 정보 및 환경 관련 규제준수를 위한 비용에 관한 사항’을 비롯해 ‘환경 관련 법령 위반에 따른 제재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민간투자를 견인하는 공적연기금에 대한 법 개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회책임투자를 직접 규정하고 있는 법 사례는 ‘국민연금법’으로 ‘국민연금의 ESG 고려와 공시법’이 유일하다. 사회책임투자 등 지속가능금융 활성화를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ESG 정보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까지는 법이 ESG 고려를 강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규모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국가재정법’을 개정을 통해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재정법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65개 공적연기금의 기금운용을 규정하는 최상위 법이다.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모든 공적연기금이 ESG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사회책임투자를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효성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이 필요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배구조, 경영실패에 관한 주주책임론 등장과 함께 기관투자자의 경영감시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했다. 투자의 전 과정에서 ESG를 고려하며 자산소유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책임투자의 국제적 확산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EU, 영국, 캐나다,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등이 코드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2014년 말 금융위원회가 코드 제정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금까지 지연되어 오다가 올해 12월 5일 공청회를 거쳐 12월 중순 코드를 최종 공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실효성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은 금융기관의 책임을 가시화하여 사회책임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후환경규제와 산업·금융의 변화’ 국제공동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이 패널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Omar Selim 아라베스끄 파트너스(Arabesque Partners) CEO,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 Anthony Serhan 모닝스타 상무이사, 홍기현 서울대학교 경제학 교수, Eric Usher UNEP FI 대표, 고기석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국장,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용주 한국산업기술원 원장,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사진/KSRN
송은하 KSRN기자
편집 KSRN 집행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