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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국민연금은 ‘유니버셜 오너’…단기수익률 관점 떠나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국내 SRI 확산에 앞장
입력 : 2017-09-04 오전 8:00:10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해 뇌물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판결함에 따라 국민연금 정상화를 향한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전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현재, 국민연금은 지난달 말 임원추천위원회를 열어 새 이사장 공모에 나섰다. 이번 주 8일까지 공모가 진행되는 가운데 새 이사장 체제에서 문 대통령이 공약한 ‘사회책임투자(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원칙에 따른 국민연금 주주권의 강화’가 이뤄질지 기대가 모아진다.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사진)로부터 국민연금의 사회책임과 우리나라 금융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서스틴베스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회책임투자(SRI)에 입문 계기가 궁금하다.
증권시장이 굉장한 호황세일 때 취업을 했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수익이 높고 전망이 좋아 전공과 상관없이 증권사에 들어가게 됐다. 13년을 열심히 일하면서 주가조작과 같은 한국 자본시장의 문제를 여실히 보았다.
 
그러다 현대증권 지점장이었던 2000년, 당대 히트작이었던 '바이코리아 펀드'가 시세조종에 사용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마흔한 살의 나이에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처음 SRI라는 개념을 알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SRI 전문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를 하고, 관련 분야 펀드에서 일을 하다가 한국에 들어와 2006년 서스틴베스트를 창립했다.
 
-창립 11년째다. 서스틴베스트는 무엇을 해오고 있나.
전반적으로 SRI 산업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알게 하는 데 노력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10년 전만 해도 사회책임투자를 아는 사람이 재계나 금융계에도 몇 없었다.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비재무적 지표(ESG)가 투자전략에 중시되는 생태계를 만드려면 먼저 SRI 개념을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한동안 신문에 글을 내고 책도 내며 개념 소개에 정성을 들였다.
이어 운용사들에 접근해 사회책임투자를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운용사들을 먼저 찾아가 사회책임투자 전략을 제시하고 설득했다. 최근 3년엔 국민연금 관련한 활동이 많다. 국민연금 내부 ESG 평가모형을 만들었고, 사회책임 투자형 주식을 운용할 때 성과를 평가할 지표도 마련했다.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기관의 ESG 정보 모니터링도 한다.
 
-국민연금이 국내 SRI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국민연금은 600조원 수준의 운용자산을 가진 공적 연기금이다. 이 운용자산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곳으로 투자가 이루어진다. 그 중 국내 주식에 약 120조원을 투자(2017년 2분기말 기준)하는데, 100여 개 대기업 지분을 약 10% 전후로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은 다 포함돼 있다고 보면 된다. 단일 주주로서는 최대 주주의 권위를 누린다. 120조 중 절반 정도는 자산운용사에 위탁 운영을 맡긴다. 운용사들은 국민연금이 운영을 맡기면서 내리는 지침들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투자 체인 중에 가장 상단에 ‘어셋 오너’ 인 국민연금이 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국민연금은 SRI 확산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시민사회가 국민연금에 도입을 촉구하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전체 기관투자자·운용사 중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곳은 극소수다. 그러나 국민연금에서 이를 도입한다면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이 급격히 가속화될 것이라 본다.
 
-국민연금 운영진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
작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투자 중인 주식 종목이 약 280개다. 우리나라 웬만한 상장기업엔 다 투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국민경제가 전반적으로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어야 국민연금도 만족스러운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구조다. 국민연금의 투자 퍼포먼스는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상관관계가 높은 셈이다. 이런 성격의 기관투자자를 ‘유니버셜 오너’(universial owner)라고 한다.
 
국민연금과 같은 ‘유니버셜 오너’들은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동시에, 해외에서 한국 시장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란 말이 있다. 한국시장이 실질 가치에 비해 해외에서 저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북한 리스크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첫 번째,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다는 이유가 두 번째다. 북한을 어쩔 도리는 없겠지만, 지배구조에 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때문에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상장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ESG 생태계 조성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유니버셜 오너’로서 가져야 할 비전이라 본다.
 
-그동안은 왜 지켜지지 못했을까.
일차적인 이유는 당연히 국민연금 운영진에 있다. 기금 운영을 투자전문가들이 하는데, 나도 13년 동안 하다 나온 일이지 않나. 박스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비단 국민연금 기금운영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민연금 기금운영자들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감사원, 국회 등이 “국민연금 올해 6개월 수익률 안 좋다” 식의 말을 하면 한바탕 난리가 이어진다. 감시하는 사람들부터 단기적인 관점을 제시하니 국민연금도 거기에 조응해 단기수익률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그냥 돈 먹고 돈 따먹는 투자자가 아닌, ‘유니버셜 오너’라는 생각을 사회적으로 합의해 줘야 한다. 단기수익률만 가지고 국민연금을 밀어붙여선 안 된다.
 
-존 케이(John Kay)의 책을 번역해 <금융의 딴짓>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금융의 딴짓> 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사실 영문판 제목을 직역하면 ‘타인의 돈’이다. 저자는 스튜어드십에 입각해 금융서비스를 운영해야 할 소명이 언제부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튜어드라면 투자자산을 꼼꼼히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전혀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금융 기관들끼리 사고 파는 트레이딩이 늘어났다. 자꾸 사고 팔아야 수수료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금융은 이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금융이 남의 돈을 이용해 ‘딴짓’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 당시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데도 거의 모든 증권사가 합병에 찬성하는 레포트를 냈다. 생존과 자사 이익을 위해 삼성의 편을 든 것이다. 우리나라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리포트들이 독립적으로 예상층을 관리하면서 보고서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금융 환경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의견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금융 규제자 중심의 금융시장이 발달해 왔다. 금융업자들의 기득권은 고착화했다. 카카오뱅크가 1993년 이후 정부가 처음으로 인가한 은행이라고 한다. 관-은행이 밀착되어 있다 보니 새로운 플레이어가 시장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산업이든 경쟁력을 높이려면 자꾸 메기 새끼를 풀어야 한다. 관치금융의 요소를 끊어내고 수탁자의 책임을 다하는 스튜어드십 회복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새 이사장 공모에 나선 가운데 문 대통령이 공약한 ‘사회책임투자(SRI) 원칙에 따른 국민연금 주주권의 강화’가 이뤄질지 기대가 모아진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진/뉴시스
정윤하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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