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된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를 기점으로 차명계좌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자는 의미다. 다만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된 이건희 회장의 1200여개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소급 적용할 수 있느냐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차명계좌를 활용한 일부 고액 자산가들의 탈법 행위가 여전히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판단,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실명법 제도 개선 방안을 5일 발표했다.
이번 법 개정안은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후 개설된 계좌를 활용한 탈법목적 차명 금융거래에 대해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은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전 개설된 계좌의 금융자산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현행법상 불법재산의 은닉, 자금세탁 등 탈법행위 목적의 금융거래는 금지되고 위반시 형사처벌하고 있으나 불법수단으로 활용된 차명계좌에 대한 경제적 징벌은 없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위해 진행 중인 검사도 1993년 이전에 개설된 27개 계좌에 한정돼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실명제 시행일 기준 이건희 차명계좌 27개의 자산총액은 61억8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이와 함께 법 개정안은 과징금 산정시점, 부과비율 등 과징금 산정기준을 현실화하고, 수사기관과 과세당국, 금융당국 간 차명 금융거래 정보의 공유를 위한 근거를 신설하는 내용도 담기로 했다.
또 과세당국이 자금의 실권리자(출연자)에게 과징금을 직접 부과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신설하기로 했다. 검찰 수사, 국세청 조사 등으로 사후에 밝혀진 탈법목적의 차명 금융자산에 대한 지급정지조치 신설될 예정이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자산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책정한 현재 기준에 대한 평가를 포함해 소급 여부, 적용 기준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 입법 추진 과정에서 법 개정 취지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다만 일반 국민의 정상적 금융거래로 볼 수 있는 차명 거래는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해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금융거래 위축을 방지하기로 했다. 일례로 자녀 명의의 계좌나 동창회 계좌 등이다.
문제는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소급적용할 수 있느냐다. 개정안을 소급적용 하지 않는다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돼 시행된 뒤에 검찰 수사 등으로 탈법 목적임이 드러난 차명계좌에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 경우 지난 2008년에 드러난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1229개 중 실명제 시행일 이후 개설 계좌 1202개엔 여전히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게 된다.
김용범 부위원장은 "소급이냐, 아니냐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검토해야 한다"며 "과징금 부과 대상의 기준, 방법에 대해 입법 추진과정에서 제도 개선 취지가 최대한 발휘되도록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금융실명법 관련 제도개선 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