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취임 일성에는 금융위원회로부터의 감독권 독립 강화, 금감원 조직 개편 필요성 등 금융정책과 감독의 견제를 강조하는 내용이 보인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역대 금융관료 출신 금감원장들이 상위부처인 금융위와의 '혼연일체'를 강조해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금감원 설립 이후 첫 정치인 출신 원장이자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실세 원장'이라는 타이틀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미완의 금융공약 이행을 앞두고 앞으로 금융위원화와의 주도권 싸움이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원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금감원의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금융시장 안정의 유지와 금융소비자 보호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특히 소비자 보호 부분을 언급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금융회사의 불건전한 영업행위로 인한 금융소비자의 피해 사례가 빈발하고 있으며,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선 '약탈적 대출'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며 금감원이 해야 할 감독 방향을 밝혔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정책기관과 감독기관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감독의 원칙이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 의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금융정책기구인 금융위원회와 가야하는 방향은 같겠지만, 금감원은 금융감독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원장이 이른바 '실세 원장'으로 지목되고 있는 터라, 금융위원회와의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분석인 나온다. 이는 올해 금융위의 정책·감독 기능을 분리해 정책 기능은 기재부에, 감독 기능은 금감원에 몰아주는 내용의 감독체계 개편 논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체계 개편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문재인정부의 금융공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금감원의 독립성과 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감독체계 개편론자다. 그가 소장으로 있던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는 지난해 금융위를 해체하는 내용의 금융감독체계 개편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감독체계 개편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이다. 지난해 취임 당시 최종구 위원장은 "여전히 어떤 체제가 가장 효과적이다라고 할 만한 방안을 갖고 있지 않다"며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두 수장이 충돌한 지점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재무관료 출신의 최 위원장과 정치인 출신의 김 원장은 성향과 네트워크가 다를수밖에 없다"며 "앞으로의 주요 금융정책에서 역할 등 관계 설정에서 양 기관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김기식 원장의 금감원 역할 강화 발언에 대해 반기는 분위기도 읽힌다. 지난 박근혜정부에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수장들이 취임할때마다 '혼연일체'를 유달리 강조해왔다. 대내외 금융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책기구와 감독기구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명분에서다.
그러나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융정책의 견제 기능을 해야하는 금감원의 기능이 마비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금감원 노조는 이날 설명서를 통해 "그동안 금융관료 출신 원장들은 금융위의 '예스맨'이 되어 금감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데 앞장서 왔다"며 "김 원장은 금감원 기능회복을 위한 대안을 찾는 데 신중을 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김 원장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통한 금감원의 위상 회복을 강조했다. 그가 정무위 활동 중 가장 큰 성과로 최고금리 인하를 꼽은 만큼 앞으로 최고금리 인하,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방지, 과도한 가산금리 인상 억제 등에 심혈을 기울일 걸로 예상된다. 금감원 관계자도 "김 원장이 업무보고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나 서민금융쪽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김 원장이 과거 금융업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강골 규제론자'로 알려지면서 금융권에선 우려 섞인 반응이 교차하고 있다. 김 원장은 이날 기자실을 찾아 "제가 규제 강화론자로 알려진 것은 오해"라며 "원칙과 소신을 갖고 지금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의 우려는 여전하다. 앞서 김 원장은 은산분리 규제 강화, 금융회사 기업지배구조개선, 대주주 적격성 심사 2금융권 확대 등 규제 강화에 주력해왔다. 은행에 대해서도 글로벌 경쟁력 없이 예대마진을 위한 '이자장사'에 주력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김 원장은 지난 2016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영세 자영업자 카드 수수료 인하 등 서민 정책 추진을 주도하기도 했다. 은행, 카드, 보험사 등이 좌불안석인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무위 시절을 돌이켜보면 금융업황을 고려하지 않고 개혁 기조를 일관해 걱정스럽기도 했다"며 "아무래도 금융권에 대한 개혁요구가 그만큼 강해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왼쪽부터 최종구 금융위원장,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