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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소프트랜딩하나)④시장 커지는데…답보하는 정부대책
규제 도입 6개월…ICO 가이드라인·제도권 편입 '요원'
입력 : 2018-04-09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 지난해 30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한 김기남(58·가명)씨는 채굴기 투자로 퇴직금 5000만원을 한 번에 날렸다. 한 가상화폐 사업자로부터 ‘이더리움’을 생성할 수 있는 채굴기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위탁 운영을 맡겼지만 다단계 조직으로 판명되면서 원금을 받을 방법도 요원해졌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해킹과 유사수신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이나 대책 없이 뒷짐만 지고 있다. 작년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열풍이 일어나며 블록체인을 활용한 기술 개발과 가상화폐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있지만 법적·회계적 정비는 이뤄지지 않고, 제도권 편입을 통한 양성화도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다.
 
김용범 부위원장이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 중 금융부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 훈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 최성일 금감원 부원장보,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정완규 금융정보분석원장, 김홍식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사진/금융위
 
4차산업혁명 '육성'·가상화폐 '외면'…컨트롤타워 3차례나 변경되며 '혼선'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규제에 처음 칼을 뽑은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 법무부, 금융감독원 등으로 이뤄진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를 통해 가상화폐 거래 시 본인확인을 의무화하고, 증권발행 형식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ICO(가상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금융당국은 ‘기존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 관련 입법 논의조차 없는 상태다. 문제는 관련 법안이 없어 사실상 우회적인 자금 모금이 가능한데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결제시스템과 관련 산업의 등장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블록체인 기업 역시 규제망을 피해 싱가포르와 스위스 등지에서 ICO를 추진 중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을 육성한다고 표명한 정부가 오히려 산업 후퇴를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아울러 해킹이나 다단계 등 피해사기에 대해서도 금융감독원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센터를 통해 수사당국에 신고하는 것 이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올 초 ‘가상화폐거래 피해 소비자 신고센터’를 마련한 금융소비자연맹은 “가상화폐 거래 투자로 인한 손해는 전적으로 투자자의 책임이지만, 정부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투기조장이나 불법거래, 거래소의 취약한 보안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금융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찾도록 합리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범정부 차원의 정책이 오히려 시장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기도했다. 전체 정책를 총괄할 콘트롤타워 자체가 금융위에서 법무부로 이동했다 기재부로 바뀌었고, 특히 지난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부처별로 중구난방식의 대책을 제시하며 혼선도 빚어졌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 또한 작년 말 기자담회에서 ‘가상화폐 거품론’을 거론했다가 불과 2개월 만에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통한 규제를 시행 중이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1월말부터 가상화폐 후속 보완 조치로 은행과 가상화폐 거래소 간 계좌 실명제와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중소 거래소는 은행과의 신규 거래 자체가 막혔으며, 국내1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에서는 신규 거래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금세탁방지 점검에 은행권 '눈치보기'…법안도 국회서 '표류'
 
이런 현상은 금융당국이 자본세탁 방지 카드를 꺼내며 계좌개설 자체가 까다로워진 데다 은행권도 눈치 보기 양상을 보인 데 따른 결과다. 반면 후오비와 오케이코인 등 중국에 기반을 둔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이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거래소를 열고 있어 오히려 자본이 중국 등 해외로 흘러갈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한국금융ICT학회장)는 “현재 국내에서는 가상화폐에 대해 법적, 제도적인 정의조차 제대로 내려져있지 않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아 빗썸 부사장은 “가장 큰 문제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기준이 없고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사장은 “블록체인 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가상화폐가 자리 잡지 않는다면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블록체인 자체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서비스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법안도 표류 중이다. 가상화폐와 관련해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현재 총 3가지다. 박용진 의원은 최소 5억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요구하는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으며, 정태옥 의원은 ‘가상화폐 업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해 3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요구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밖에 정병국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암호통화 거래에 관한 법률안’에는 등록제로 자기자본 1억원 이상만 충족하면 됐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안이 투자성에 초점을 두고 있어 지급결제성과 관련된 쟁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다양한 불공정행위를 사전적·사후적으로 탐지해 규제하는 구체적 방안과 거래소의 거래대상 추가·제외 행위 등에 대한 규제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외국환거래규정상 소액해외송금업자의 가상통화 취급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그 외 법규에서 명시적으로 가상통화를 규범적 영역에 포섭해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문제가 되고 있는 가상통화의 투자성과 관련한 쟁점을 보다 심도 있게 다루고, 지급결제성과 관련된 쟁점도 아우를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방선거 이후 과세 방안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오는 6월14일쯤 G20 회원국 대상의 `가상화폐·블록체인 관련 국제금융 컨퍼런스`를 개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무엘 임 김앤장 변호사는 “한국의 경우 6월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선거 이후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규제는) 국가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시장 발전을 위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며 “시장의 사장이 아닌 적절한 보호와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가상화폐 과세 TF'를 통해 과세 자료 확보방안이나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과세안 발표 시기 등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백아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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