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이 실시한 ‘2017학년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의 약 80%가 주 1회 이상 패스트푸드를 섭취한다. 주 3회 이상 섭취하는 비율은 평균 20%다. 초등학생은 68% 이상이 주 1회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는다고 답했다. 중·고등학생 5명 중 4명, 초등학생 3명 중 2명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패스트푸드 섭취율은 계속해서 높아지는 추세다. 주 1회 이상 패스트푸드 섭취율은 5년 연속 상승했다. 식습관이 어려서부터 형성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조사에서 빠진 미취학 아동의 패스트푸드 섭취율 역시 낮지 않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주 1회 이상 채소섭취율은 초중고교 평균이 26%. 수치만으로 보자면 패스트푸드를 채소보다 3배정도 자주 먹는 셈이다.
청소년들의 패스트푸드 노출 빈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패스트푸드 안전성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햄버거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일명 ‘햄버거병’으로 불리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에 관한 공방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6년 9월, 맥도날드에서 해피밀(햄버거) 세트를 섭취한 A양은 당일부터 설사와 구토 증세를 보였으며, 이틀 후 붉은색 점액질의 혈변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용혈성요독증후군 진단을 받은 이후 신장기능의 90%가 손상됐으며 신장장애 2급을 진단받았다. 이후 매일 복막투석을 10시간씩 받고 있다.
피해자 측은 용혈성요독증후군의 원인으로 햄버거의 패티를 지목했다. 발병 전 식단을 검토했을 때 문제될만한 것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증상의 ‘햄버거병’이 발생했던 점을 근거로 삼았다. 피해자 측은 발병 직후 한국맥도날드에 원인 조사를 요구했으나, 같은 일자에 제조된 패티 시료 등이 남아있지 않아 오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지난 2월 검찰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한국맥도날드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패티 납품업체와 그 임직원 3명만이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4일 국회에서는 ‘햄버거병’을 주제로 한 '식품안전 정책 토론회 : 햄버거병 사건 제도 개선 과제 ‘오염 패티 햄버거 판매한 맥도날드 책임은?'”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사)소비자와함께, 환경보건시민센터, 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가 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권미혁·기동민 의원이 주최했다.
먹어서 생긴 피해, 먹어서 사라진 증거…피해자만 고통
검찰의 불기소 처분 근거는 크게 ▲쇠고기 패티의 병원성 미생물 오염 우려는 확인되었으나, 시료가 남아있지 않아 오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패티가 설익었을 수 있으나, 시료가 남아있지 않아 설익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며 ▲당시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오염된 햄버거에 의한 발병임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3가지다.
전문가들은 검찰의 처분이 식품피해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식품 피해의 특성상 결정적 증거인 음식은 이미 섭취되거나 훼손돼 시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섭취했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데, 섭취했으니 증거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섭취 즉시 증상을 일으킬 경우라면 증거 확보가 보다 용이하나, 대부분 식품으로 인한 피해는 잠복기를 갖고 발생한다. 이 때문에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현행 식품위생법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식품위생법 제4조는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을 판매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소비자가 역학관계 규명에 책임을 지거나, 증거를 수집해야 할 의무는 적시돼있지 않다. 식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판매, 조리한 주체는 물론 저장, 소분, 운반, 진열한 “누구든지” 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패티를 가공, 제조한 제조업체는 물론 이를 사용, 조리, 저장, 진열한 판매업체 역시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해당 법을 위반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무법인 율성의 김승한 변호사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햄버거병 사건 제도 개선 과제 정책 토론회’에서 “조항(식품위생법 제4조) 어디에도 식품 등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받아야만 처벌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다른 입법례와 비교했을 때, 판매자의 위법성 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법이 적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주장처럼 햄버거가 발병 원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입증하지 않더라도 ▲미생물 오염 우려가 확인되고 ▲패티가 설익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검찰 보도자료)만으로도 기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납품업체와 판매업체 모두 책임을 다해야
식품위생법에 대한 위법성 논쟁과 별개로, 햄버거와 용혈성요독증후군의 인과관계는 규명될 필요가 있다. 한국맥도날드는 패티 전량을 글로벌 육가공업체 M사로부터 공급받는다. 검찰조사 결과에 따르면 M사는 2016년 1월부터 6월까지 O-157(병원성 대장균의 일종으로 식중독 및 용혈성요독증후군의 원인균 중 하나)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된 소고기 패티 6만3643kg을 회수, 폐기 조치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 7월부터 다음해인 2017년 10월까지 역시 병원성 미생물 오염 우려가 있는 216만923kg의 소고기 패티를 67회에 걸쳐 한국맥도날드에 납품했다. 금액으로는 시가 160억원 상당이다. 오염 가능성이 있는 패티가 그대로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간 것이다.
맥도날드 역시 책임을 회피하긴 어렵다. 2016년 7월,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된 소고기 패티가 납품된 사실을 맥도날드가 일찌감치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한국맥도날드는 각 매장에서 사용 중이던 패티를 리콜했으나 납품된 양이 어느 정도인지, 수거 혹은 폐기된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일부만 회수됐거나, 전량 리콜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이미 상당부분 소비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 큰 문제는 맥도날드가 이를 인지한 후에도 납품업체를 교체하지도, 자체적 위생검사를 실시하지도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일각에서는 오염 패티 유통 과정에 한국맥도날드가 개입했는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대장균 노출 패티의 납품 사실을 인지하고 협의를 통해 안전성 문제가 재발했을 경우의 책임을 모두 납품업체인 M사에 부담했다.
이후에도 납품업체는 꾸준히 오염 우려가 있는 패티를 납품했으나 한국맥도날드는 한 번도 자체검사나 점검을 진행하지 않았다. 소비자에게 판매된 패티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데 반해, 책임소재만 납품업체 B사로 전가된 셈이다. 일종의 위험의 외주화다. 이 과정에서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에게 남겨진다.
오염 우려가 있는 패티가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사이 피해호소자는 늘어났다.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A양 사례를 포함한 5건의 유사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5건 모두 아동이 피해 당사자로, 햄버거를 섭취한 당일부터 설사를 시작했고 2일~9일 이후부터 혈변을 시작했다. 이 중 2명의 피해자는 50~90%의 신장 손상을 겪어 영구히 장애를 얻게 됐다. 피해자 측은 햄버거 이외에는 별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다각적이고 즉각적인 해법이 마련돼야
근본적 원인은 식품 관리 체계 전반에 있다. 우선 햄버거 패티 등 오염 높은 가공육에 대한 안전관리가 의무화될 필요가 있다. 현재 육함량 100%인 순(純)소고기 패티는 검사의무가 면제된다. 돼지고기 패티는 장출혈성대장균 등 병원성미생물 검사 의무 대상이지만 다른 종류의 패티와 함께 생산되는 경우엔 이를 교묘히 피해갈 수 있다. 다른 종류의 육고기 패티를 검사하면 돼지고기 패티의 검사 의무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사)소비자와함께의 문은숙 대표는 “납품업체가 이를 악용해 장출혈성대장균 오염 가능성이 낮은 닭고기 패티만 외부검사를 의뢰하여 돼지고기 패티에 대한 검사의무를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영순 농축수산물정책과장은 이날 열린 ‘햄버거병 사건 제도 개선 과제 정책 토론회’에서 “식육가공업 영업자가 생산한 분쇄가공육제품에 대해 매출액을 기준으로 HACCP를 단계적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HACCP는 식품의 최종상태뿐 아니라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위생관리 시스템을 말한다. HACCP이 적용될 경우 이전에 비해 보다 광범위한 수준에서 분쇄가공육제품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된다.
판매업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식품 안전을 책임지게 하기 위해선 정책적 노력뿐만 아니라 제도적 개선도 진행돼야 한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패티 납품업체가 아닌 한국맥도날드의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제품을 구매한다. 한국맥도날드와 같은 판매, 유통업체가 소비자의 식품에 보다 적극적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제정해 소비자에 대한 신의성실의원칙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론 패티의 굽기 온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당장의 추가 감염을 방지할 수 있다. 장 출혈성 대장균에서 배출되는 독소 성분인 시가독소는 통상적인 저온살균으로는 비활성화가 되지 않는다. 패티가 균에 노출됐더라도 고온으로 완전히 익히면 살균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설익히거나 저온 살균할 경우 소비자가 독소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법무법인 혜의 황다연 변호사는 “각 판매 매장에서 조리법과 안전교육을 의무화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 국회에서는 ‘햄버거병’을 주제로 한 식품안전 정책 토론회 '햄버거병 사건 제도 개선 과제 ‘오염 패티 햄버거 판매한 맥도날드 책임은?’이 열렸다. 사진/KSRN
송은하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