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오너일가 갑질 논란의 여파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당초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광고대행사 직원들에 대한 물컵 투척으로 시작한 이번 사태는 조 전무의 등기이사 선임과 관련된 항공법 위반, 조 전무의 모친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언, 명품 밀반입 논란 등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경찰은 물컵 투척 피해 광고대행사와 대한항공 본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8일 회의 석상에서 “갑질 문화는 채용비리와 함께 국민의 삶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불공정 적폐”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기업의 오너 리스크는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 갑질 논란 이후 대한항공의 주가는 연일 뒷걸음질치고 있다.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의 역량을 믿고 돈을 맡긴 투자자들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악재다. 이같은 일이 불거질 때마다 투자자들은 속앓이를 할 수 밖에 없다.
재벌들의 안하무인적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들이 최근 몇 년간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당사자들은 공식 석상에 나와 머리를 조아리지만 그때 뿐이다.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상식을 벗어난 갑질은 오늘도 계속된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전직 대통령을 촛불 혁명으로 몰아낸 국민이다. IMF 때는 금모으기 운동으로 나라를 파산 위기에서 건져 올렸다. 국민의 눈높이는 더 이상 이런 일을 용납하지 못하는데 기업문화는 아직도 수십년 전 군사독재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오래 전 국내 최대 기업의 총수가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지만 기업문화 역시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이번 일로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금융감독원장의 사퇴와 ‘댓글조작 의혹’ 연루 등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국민 정서는 더 이상 과거의 관행을 용납하지 않는다. 결과와 관계없이 과정에 있어서도 한점 의혹이 없어야만 국민들의 검증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과거 해외출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자는 요구가 거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 금감원장의 의원시절 행적을 문제 삼아 사퇴를 이끌어 낸 국회의원들은 과연 얼마나 떳떳한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이율배반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보자는 것이다. 이번 사례를 정치공방으로 소모해 버리지 말고 한국의 정치문화를 바로잡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유권자들의 목소리다.
댓글조작 논란과 관련해서도 객관적 시각으로 진실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면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일반인들의 정당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브로커의 댓글 조작과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낡은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 왔다”는 자기합리화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옳고 그른 것은 명명백백하다. 국민들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원한다.
손정협 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