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이 한 창이다. 6월 7일 발표기준으로 볼 때 1위는 독일이고, 브라질, 벨기에,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우리나라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현재 랭킹 1위인 독일을 이기는 이변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현재 FIFA랭킹은 57위다. 스포츠에서 랭킹은 승부와 관련해서는 어쩌면 그저 숫자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경기의 승패와 별개로 순위는 객관적인 전력에 대한 평가이며 이는 곧 전반적인 수준을 의미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순위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순위가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객관적 기준에 의하여 산출된 랭킹은 그 나라의 현 수준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급하는 것이 부끄럽고 안타까운 순위가 있다. 물론 그 순위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고, 산출방식이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어쨌든 그 순위는 이렇다. 스위스 국제개발경영연구원(IMD)은 매년 회계투명성 부문 국가별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2017년 회계투명성 부문 국가별 순위’에서 조사 대상 63개국 중 한국은 63위를 차지했다. 2016년 같은 조사에서도 61개 대상 국가 가운데 한국은 61위였다.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평가가 연이어 꼴찌를 차지하고 말았다. 과연 그 정도로 좋지 못한 상황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연이어 터진 회계부정사건을 되새겨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하게 된다.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쉽지는 않겠지만 오를 수 없는 산도 아니다. 아니 꼭 올라야 하는 산이다. 더디 오르더라도 꾸준히 전진해야만 한다. 그 장도의 의미 있는 첫걸음은 지난해 시작되었다. 지난해 4월 금융위원회는 회계제도 개혁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공표하였지만, 관련 상황을 바라보는 전문가 및 업계에서는 과연 이번에는 어떠한 성과를 낼지에 관해 의심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보면 이러한 대책마련이 처음은 아니며 번번이 좌절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9월말 전격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은 획기적인 회계제도 개혁방안을 여럿 담고 있다.
개정된 ‘외부감사법’은 올해 11월 시행되며 이에 따르면 감사위원회가 회계처리 위반 및 부정행위 등의 사실 또는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한 경우에는 외부전문가를 선임하여 즉시 조사 및 시정조치를 하여야 한다. 또한 조사결과 및 회사의 시정조치 결과 등을 즉시 증권선물위원회 및 감사인에게 제출하여야 하고 외부감사인을 직접 선정하는 등 경영진 감독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관련 법 개정 등 제도변화에 부응하여 감사위원회의 역할 및 기능을 재정립하고 내부 감사기구의 감시, 통제 강화와 관련하여 감사위원회의 적극적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해졌다. 특히 실제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상장회사의 경우 이를 실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그리고 감사위원의 경우 감사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때그때 참고하기 위하여 감사위원회의 운영과 관련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자율적인 규범의 필요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감사위원회 모범규준'이다.
모범규준은 지난 6월 감사위원회 운영 전반에 관하여 최선관행(best practices)을 담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제정하여 공표하였다. 모범규준은 전문과 내부감사기구, 감사위원회 구성ㆍ선임 및 자격요건, 감사위원회 운영, 감사위원회 역할과 책임, 외부감사인과의 관계,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 등 여섯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감사위원회 설치와 관련해서는 자산총액 1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기업에 내부감사기구로서 감사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고, 감사위원회의 목표와 조직, 권한과 책임, 업무 등에 관한 규정을 명문화하고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감사위원회 산하에 감사위원회를 보좌하고 감사실무 업무를 수행하는 내부감사부서를 설치하여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다.
감사위원회 구성, 선임 및 자격 요건에서는 감사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중심내용으로 담고 있다. 감사위원회는 최소 3인 이상의 이사로 구성하되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전문성 확보를 위하여 최소 2인 이상의 회계 또는 재무전문가가 감사위원회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회계 또는 재무전문가인 감사위원은 법규에서 요구하는 자격과 경력 이외에도 재무제표 작성에 적용되는 회계기준, 회계감사, 내부통제 업무에 관하여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여 회계감사 관련 전문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감사위원회 운영 관련해서는 분기별 최소 1회 정기회의 개최 등 충분한 회의 시간을 확보하고, 감사직무 수행에 필요한 정보가 원활하게 제공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감사위원회의 독립성과 활동에 관한 정기적 평가를 수행하고, 감사위원의 직무 투입시간과 노력, 법적 책임이 강화되는 점에 비추어 이에 상응하는 보수 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감사위원회 역할과 책임에서는 주요 감사업무, 재무보고, 내부신고, 내부통제 및 리스크관리시스템, 내부감사부서 등에 관한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내부신고 관련해서는 균형 잡히고 독립적인 조사, 적절한 후속조치가 가능하도록 내부신고시스템 완비를 요청하고 있다. 또한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평가, 리스크관리시스템 감독을 내용으로 하는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시스템 평가를 감사위원회의 역할로 명시하고 있다.
모범규준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외부감사인과의 관계다. 개정된 외부감사법에 의하면 감사위원회가 직접 외부감사인을 선임해야 하므로 감사위원회는 외부감사 전 단계에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여야 한다. 감사위원회는 외부감사인 선임 전 독립성과 전문성, 징계여부 등을 고려하여야 하고, 선임 후에는 외부감사인과 외부감사상황에 대하여 수시로 의논하고, 최소한 분기에 1회 이상 경영진 참석 없이 외부감사인과 만나서 외부감사와 관련된 주요 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논의결과를 내부감사업무에 반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경영진과 외부감사인간 의견불일치 사항 관리, 점검 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과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부분에서는 이해관계자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감사위원회는 자신의 권한과 성과를 매년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개선방안을 이사회에 제안하여야 하며, 최소한 매년 1회 이상 감사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감사위원회는 주주 등과의 의사소통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주주 등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감사위원회가 효과적으로 운영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감사위원회 관련 내역을 적절하게 공시하여야 한다.
모범규준은 기본적으로 강제성이 없는 자율적 규범이므로 상장기업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따를 수 있도록 감독당국, 자율규제기관 등 유관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관련한 다양한 정책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장기업의 적극적인 수용이다. 모범규준이 시장자율적인 규준으로 법적 강행성은 없다하더라도 바람직한 내부감사기구 운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우리 상장기업은 모범규준의 주요 내용을 확인하여 감사제도 운영 및 개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특히 모범규준의 내용 중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거나 제공하여야 하는 사항, 제도적으로 준비하여야 하는 규정 마련 사항 등을 체크하여 대비하면 더욱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므로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감사위원회 설치 및 운영규정, 내부감사부서 설치 및 운영 관련 사항, 감사위원회 활동 평가 항목 및 절차, 감사위원 보수 산정기준, 감사위원 교육제도, 외부감사인 선임 및 외부감사 실시 절차 등이 주요사항이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것들은 향후 제공 예정인 감사위원회 매뉴얼에서 사례 및 예시의 형태로 제공될 계획이므로 이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또한 감사위원회 위원이나 감사 또한 기존의 관행에 젖어 형식적으로 감사업무를 수행한 경우 그 결과로 회계부정이나 기업비리 등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스스로 역할과 책임 및 권한을 숙지하는 노력을 하고 감사업무 수행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장회사는 감사기구를 운영함에 있어 법적 요건을 맞추는 최소한에만 머물려는 소극적 자세보다는 더 큰 손실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감사기능을 재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특히 감사기능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집행에 장애가 되는 거추장스럽고 비용만 추가되는 제도가 아니라 준법경영과 장기적인 지속가능발전을 이끌고 지원하는 필수 불가결한 기능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하여야 한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