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아경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정상화의 일환으로 대한항공 사내이사 사퇴 카드를 꺼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럴 경우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경영을 담당해, 경영권 승계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3월 열리는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지난 2016년 사내이사에 선임돼 임기 3년인 올해 재선임 받아야 한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지분을 끌어모아 한진그룹 경영 지배구조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총수 일가 퇴진을 바라는 국민연금의 압박도 강하다. 국민의 차가운 여론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어 한진그룹으로선 무조건 조 회장 일가 방어에만 집착할 수 없다. 따라서 막다른 골목에 놓인 상황을 반전 시킬 수 있는 카드는 조 회장이 책임을 떠안고 대한항공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는 대신 조 사장이 남아 경영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한항공 지분현황.자료/전자공시시스템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서 빠진다고 해도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사내이사 임기는 내년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지배구조상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경영보폭이 상당히 제한될 것은 분명하다. 이 정도만 되어도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바라는 투자자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문제는 조 회장이 과연 그러한 큰 결심을 할지 확실치 않는데다가 투자자들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여전히 한진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23일 국민연금 기금위 산하 수탁자책임위원회 위원 다수가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반대의견을 제출해 당장 국민연금이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일반 의결권 행사를 통해 조 회장의 재선임을 막을 기로는 열려있는 상황이다. 조 회장이 재선임을 추진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재계는 분석했다.
대한항공 이사 선임은 주총 보통 결의 사항으로 출석주주 과반수 이상에, 발행주식 총수 4분의 1 이상 결의만 있으면 된다. 국민연금 수탁위 9명 중 7명은 조 회장의 이사연임에 반대하는 주주권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표 대결이다. 조 회장 일가가 대한항공 지분 33.4%를 보유한 데 비해 국민연금 지분은 11.6%에 불과하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6년 조 회장의 이사선임에 대해 과도한 겸임과 장기연임을 이유로 반대했으나 결국 가결됐다. 2017년에도 같은 이유로 조 회장의 한진칼 이사 선임이 가결됐다.
다음달 1일 전후로 예정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와 그 범위를 결정한다. 기금운용위에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한다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과정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이 부담해야 한다. 조 회장 사퇴론은 그래서 불거지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내부 관계자는 “조 회장이 자진사퇴 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반응이 대세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만약 그럴 경우 조 사장이 회사를 경영하기를 바라고 있다. 항공산업과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외부 인사가 올 경우 또 다른 위기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아경 기자 akl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