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7나노 극자외선(EUV) 공정 양산에 이어 5나노 공정을 시험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EUV 공정을 가장 먼저 도입했던 삼성전자는 하반기 7나노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파운드리 1위 자리를 노리던 삼성전자에는 다소 힘 빠지는 소식이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국을 방문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왕세제와 2주 만에 두 번째 만남을 가지면서 역전의 기회가 엿보이고 있다. 이 자리에서 모하마드 왕세제는 삼성전자에 글로벌파운드리(GF) 지분 매각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는 UAE 국영기업 ATIC가 지분 90%를 소유하고 있는 글로벌 3위 파운드리 업체다.
IC인사이츠와 디지타임스 등에 따르면 TSMC는 오는 3월말 EUV 노광장비를 사용한 7나노 공정 반도체 칩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TSMC는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올해 EUV 노광장비 생산량 30대 중 18대를 예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ASML은 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는 업체로, TSMC가 올해 EUV 생산설비의 60%를 선점한 셈이다.
이에 더해 TSMC는 EUV를 활용한 5나노 공정을 개발 중에 있으며 올해 상반기 안에 시범생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는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TSMC가 성공적으로 5나노 EUV 공정을 가동하면 세계 최초가 된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결과다.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7나노 공정에 돌입한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었고, 7나노 공정에 EUV 장비를 도입한 것은 삼성전자가 최초였다. 그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작업에는 불화아르곤(ArF)이 적용됐지만 공정이 10나노 이하로 미세화 되면서 이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EUV는 기존 ArF보다 파장 길이가 14분의 1에 불과해 세밀한 회로 패턴 구현에 적합하고 복잡한 공정을 줄일 수 있어 미세공정에 적합하다는 게 업계 판단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7나노 EUV 공정의 시험 가동을 시작했고 고객사 일정에 맞춰 올해 하반기 본격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당시만 해도 TSMC는 7나노 공정에 기존의 ArF을 적용하고 있었고 EUV 도입은 보다 늦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TSMC의 예상보다 이른 7나노 EUV 양산 소식에 파운드리 사업에 힘을 싣고 있는 삼성전자는 긴장모드다. 삼성전자는 주력 생산품목인 D램의 업황이 지난해 4분기부터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를 꾀하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경기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도 말했다. 2030년까지 비메모리 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세계 파운드리 시장 2위로 올라섰다고는 하지만 TSMC와 점유율 차이는 36%나 난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점유율(시장조사기관 IBS 추정치)은 △TSMC 50.8% △삼성전자 14.9% △글로벌파운드리 8.4% △대만 UMC 7.5% △중국 SMIC 5.1% 등이다. TSMC는 올해도 애플, 하이실리콘, 퀄컴, 엔비디아, AMD 등 굵직한 고객사를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현재 매물로 나온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할 경우에는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커진다.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를 글로벌파운드리의 유력한 인수자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현금 보유액 100조원(104조2100억원)을 돌파하며 두둑한 실탄도 확보한 상태다. 향후 삼성전자가 M&A를 통해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25%에 가까운 점유율을 확보하고 글로벌파운드리의 거래선을 가져가면서 단숨에 TSMC의 실질적인 경쟁자로 부상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TSMC가 EUV로 7나노 양산을 먼저 시작해도 삼성전자는 내년을 목표로 3나노 공정을 개발 중으로 기술 격차가 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할 경우 시장점유율은 20%대 초중반대에 진입할 수 있으며 더 빠르게 1위를 추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