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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주식은 죄가 없다
입력 : 2019-04-22 오전 12:00:00
"강남에 35억원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었으면 이렇게 욕먹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된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남편 오충진 변호사의 말이다.
 
헌법재판관 후보의 주식투자와 관련해 쏟아진 비난에 대한 항변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말을 두고도 비판이 나오지만, 처음 들었을 때부터 공감이 됐다. 주식이 아니었다면 큰 이슈가 되고 여론의 반감을 샀겠느냔 생각이 들어서다.
 
우선 주식투자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판하는 측에서 지적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주식이 전체 자산의 80%가량을 차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매 횟수가 많다는 것. 나머지는 이해충돌을 회피하지 않고 내부자 정보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개인의 자산 비중에 대한 기준이 없으니 맞다 틀리다를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고, 두 번째는 투자성향 차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굳이 따져봐도 매매 횟수가 과도한 편이라고 하기 어렵다. 마지막은 검찰과 한국거래소 등에서 조사 중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는 해명이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큰 문제로 비치고 질타를 받은 것은 개인투자자의 분노를 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이 재판관 부부에 대한 의혹은 한마디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자산 대부분을 투자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미공개·내부정보를 취득해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단타 매매를 했다'로 정리된다.
 
이런 프레임이 힘을 발휘한 데는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주식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크게 한몫했다. 주식투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 형성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먼저 대주주나 경영진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회피하거나 세력과 결탁해 불공정거래를 한 사례가 많다. 기업 관계자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취득해 시세차익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국내에서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어 유명해진 사람은 적지 않지만 투자자들이 본받을 만한 철학이나 원칙을 제시하는 경우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나중에 보면 주식 부자로 이름을 알린 사람들이 돈을 번 방법은 투기나 사기일 때가 많다.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가 대표적 사례다.
 
기업의 성장성을 가늠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드물고 대박나는 종목을 알려주겠다며 현혹하는 전화와 문자, 광고는 넘친다. 많은 투자자가 제대로된 투자 방법을 익히기보다 수익률만 바라보는 것도 이런 행태를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다.
 
위험을 외면하고 수익률만 바라보며 누군가의 말에 이끌려 주식을 산 투자자는 손실을 보기 일쑤다. 손실을 만회하려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종목을 샀다가 또 돈을 까먹는 일도 적지 않다. 그렇게  투자 실패가 쌓인다. 이런 것들이 모이면 공개되지 않은 고급 정보를 미리 알았던 누군가와 같은 상황이 아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대박을 터뜨리기 힘들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지고 주식시장 자체를 삐딱하게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명백한 오류다. 불공정거래로 돈을 번 사례가 끊이지 않지만 전체로 보면 일부일 뿐이다.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덮어놓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주식시장은 매매자들을 연결할 뿐이다. 주식은 사고 팔릴 뿐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도 없다. 그러니 공을 세울 수도 죄를 지을 수도 없다.
 
잘못은 사람에게 있다. 자신의 노력보다 누군가에 의지해 대박을 내려는 투자자, 그들을 현혹해 돈을 벌려는 집단, 양심을 잃은 기업가와 일부 고위층. 주식에 대해 그릇된 시각을 조장하는 정치 세력.
 
투기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분명히 해소돼야 할 문제고 불공정거래도 근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있다고 주식시장과 투자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전보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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