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신경영 선언 26주년을 앞둔 삼성전자는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속적인 투자와 인재영입으로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위기의식으로 재무장”을 외쳤던 이건희 회장처럼 이 부회장 역시 삼성전자를 위기에서 기회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올해 들어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며 삼성전자 실적 부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 품목인 D램 가격 하락이 6개월 내리 하락하면서 하반기가 돼도 시황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스마트폰과 생활가전 등도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상황과 중국 업체들의 선전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은 글로벌 시장 상황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 화웨이에 거래 중단을 요청한 것과 관련, 삼성전자는 난감한 상황이다. 스마트폰과 5G 장비 시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지만 5대 매출처인 화웨이의 제품 출하량이 줄어들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 매출에도 타격을 입을 것이 예상되는 탓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일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전자 관계사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블라인드
가장 큰 악재는 지속적인 검찰 수사와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분식회계와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로 이모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이 지난 5일 구속됐다. 삼성 관계사에서 시작된 수사의 타깃이 사업지원TF에 향하면서 조직을 총괄하는 정현호 사장에게까지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수사의 방향이 승계 문제와의 연결점을 찾는 쪽으로 흐르고 있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대법원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대외적 불확실성은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할 당시와 닮아있다는 분석이다. 1990년 초반은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범세계적인 경제 전쟁이 시작된 때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가전 매장에서 삼성전자 제품은 제너럴 일렉트릭, 소니 등에 밀려 외면당했고, 세탁기 부품이 들어맞지 않아 직원들이 칼로 깎아내는 영상이 퍼지면서 삼성은 위기에 봉착했다. 이 회장은 이 위기를 삼성이 근원적인 경쟁력인 품질과 혁신에 집중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았던 선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부회장의 경영 방침에 삼성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관측이다. 이 부회장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경영보폭을 넓히며 정면 돌파를 꾀하는 모습이다. 지난 1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어 18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및 고용 계획과 최근 마련한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삼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초격차를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메시지는 위축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현재 상황과 미래 투자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