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은행이 해외금리연계 파생증권·펀드(DLS·DLF)에 대한 심의결과를 허위기재하고, 과대포장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총체적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들이 수수료 수익을 올리기 위해, DLF 심의결과를 긍정적으로 조작하고 수익률·리스크를 은행에 유리하도록 포장해 상품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러한 총체적 비리가 일어나게 된 데에는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을 꼽았다. 즉, △은행 수수료 이익(비이자이익) 확대 △DLF 상품 심의 축소 △영업점 DLF 판매 독려 △과대포장 마케팅이라는 요소들이 무리하게 진행됐음에도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금감원이 DLS·DLF를 '금융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정의한 이유도 이와같다. 상품 제조부터 판매까지 전방위적으로 조사했는데, 투자자의 이익이나 보호를 고려한 정황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은행들이 내부통제는 커녕, 오히려 수익 올리기에만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감원이 제공한 '독일국채 DLF 수익현황'에 따르면 금융사의 수수료 수익은 총 4.93%이지만 투자자에게 제시된 약정수익률은 2.02%로 두배 차이가 났다. 특히 금융사 중에서 은행의 수수료 수익이 가장 많았다. 은행은 1.00%, 증권사 0.39%, 자산운용사 0.11% 순으로 집계됐다. 금감원은 은행의 판매수수료가 높은 점이 결국 DLF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높였다고 분석한다.
은행은 매년 경영계획서에 '수수료 수익을 높이자'는 목표를 세워왔다. DLF판매 목표를 상향하고, 영업실적 달성을 독려해왔다. 예컨대, A은행은 수수료 수익 목표치를 △2017년 990억원 △2018년 2950억원 △2019년 2344억원으로 확대했다. A은행은 영업본부별, 지점별로 사모펀드 판매목표를 부여하고 하루단위로 달성률을 점검했다. B은행도 마찬가지다. B은행은 DLF 판매목표를 △2018년 6500억원 △2019년 1조원 등으로 1년새 2배나 올렸다.
은행 본점은 영업점 성과지표에도 수수료이익(비이자수익) 배점을 높이는 등 DLF판매를 무리하게 추진했다. DLF 취급 은행은 비이자수익 배점이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높지만, 소비자보호 배점은 낮았다. 무엇보다 PB센터에 대한 비이자수익 배점을 다른 은행 대비 2~7배 높은 수준으로 책정했다. 실제로 A은행은 비이자수익을 일반 영업점에 10%, PB센터에 20%를 배점했다. 반면에 소비자보호 배점은 -2% 감점으로 운영했다.
은행은 수수료 수익을 늘리기 위해 내부에서 제기된 상품의 리스크를 묵살하고, 오히려 이익을 과장했다. 은행은 규정상, 고위험 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상품선정위원회 심의 및 승인'을 거쳐야 한다. 수익과 리스크가 적절한 상품인지, 오류는 없는지 자체검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금감원 조사 결과, DLF 상품 중 은행 상품심의위원회를 거친 건수는 전체 대비 1% 미만이었다. A은행은 DLF 안건 380개 중 단 2건만 상품선정위원회 안건으로 올렸다. 더구나 A은행 상품선정위원회는 일부 위원들이 평가표 작성을 거부하자, 찬성 의견으로 허위기재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반대의견을 표명한 위원을 우호적인 직원으로 교체한 정황도 나타났다.
이근우 금감원 은행검사감독국장은 "은행 상품위원회는 관련 부서장이 위원장을 맡고, 부서 직원들이 위원으로 구성된다"며 "구조상 위원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오히려 은행들은 DLF 상품 마케팅 과정에서 '손실률 0%'라는 점을 강조해 고객들에게 상품을 판매했다. '손실율 0%'의 근거는 자산운용사가 과거 금리 추이만을 가지고 백테스트한 결과다. 오류로 점철된 근거를 자체 검토없이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후 은행은 판매직원에게 '짧은 만기, 높은 수익률'인 상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도록 교육시켰다. 실제로 B은행은 2018년 10월 본점 DLF관련 PB교육 자료에서 '대세 금리 상승기, 짧은 만기, 높은 쿠폰 수익률' 등을 강조하며 고객들에게 상품을 판매했다. A은행의 판매직원 90여명은 준법감시인 사전심의 없이 30000여건의 투자광고를 발송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러한 결과들을 토대로, 은행의 내부통제가 심각하게 부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은행 본점 수수료 수익 강화→DLF 리스크 심의 축소→영업점 DLF 판매 독려→ 과대포장 마케팅→투자자 피해'의 구조로 사태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동성 금감원 부원장보는 "은행들의 PB영업이라는 게 결국 고객들의 돈을 불려주는 게 목적인데,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실패했다"며 "내부에서 누구라도 경고했는지,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품 제조·판매 과정에서 투자자 이익반영이 미흡했다"며 "금감원도 분석하기 어려운 상품을, 투자자가 홀로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을 강요당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이 1일 금감원 브리핑실에서 DLS 검사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금감원
최홍 기자 g24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