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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제조업 '도급 vs. 파견' 논란, 이제는 정리해야
입력 : 2020-02-03 오전 6:03:13
A씨와 B씨는 제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 C사 생산 공장의 같은 라인에서 같은 업무를 한다. A씨는 C사 정규직이고 B씨는 사내하청업체인 D사 소속이지만 출근 체크와 휴식부터 휴가까지 C사에 보고하고, 모든 업무 지시를 C사에서 받는 건 같다. 두 사람은 12년째 근무 중이다. A씨가 승진하며 연봉을 올리는 동안 B씨는 계약을 반복하며 업체를 16번 옮겼다. 둘의 급여 차이는 3배 남짓. A씨가 속한 노조가 임금 등에 반발해 파업하면 협상이 이뤄지지만, B씨 노조가 파업하면 사측은 업체를 바꿔버리거나 B씨 등을 업무방해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나온다.   
 
국가부도사태 이후 20여 년간 굳어진 한국 제조업 관행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2003년 하청노조를 결성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했지만 경제 회복만 부르짖던 사회의 벽은 단단했다.
 
그러던 중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2007년 6월1일 서울중앙지법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7명에 대해 현대차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회사의 도급 계약을 불법 파견으로 규정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제기된 현대차 컨베이어벨트 공정 노동자의 부당해고 구제심판과 맞물리면서 2015년 대법원은 △지휘명령 △사업의 실질적 편입 △하청업체의 권한 행사와 독립적 실체 △도급계약의 실체 등 5가지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판례로 제조업 ‘도급 vs. 파견’ 논란은 각급 법원에서 정리되는 듯 했다. 현대제철 순천공장(구 현대하이스코) 하청노동자들은 2011년 소송 제기 5년 만인 2016년 1심에 이어 지난해 2심도 승소 후 최종심 중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노동자들도 2013년 1심에선 패소했지만 2016년 2심에서 승소 후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후 포스코의 다른 하청노동자들이 같은 법원에 제기한 유사 소송은 지난해 2월 패소했다. 지난 달 초에는 조선업 관련 첫 판결이 나왔는데,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엇갈리는 소송 결과에 대해 2007년 6월 판결을 이끌어낸 김기덕 변호사는 “개별 노동자들이 사측의 파견법 위반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모으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든 철강이든 조선이든 원청이 모든 걸 관리할 수밖에 없는 생산 시스템에 노동자만 일부 하청업체 소속으로 채우는 것이기에 구조가 유사하고, 대법원 판단기준 상 파견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다만 법원이 직접 압수수색을 할 수도 없고, 회사에 자료 제출을 명령할 수도 없는 민사소송에선 철저히 노동자가 불리하다는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연말 고용노동부가 대법원의 해석을 수용해 개정·발표한 ‘근로자 파견 판단 기준 지침’은 고무적이다. 철저한 현장 조사와 감독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입법적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하도급법의 허점이 지적되는 가운데 공정위 한 관계자는 “용역만으로 매출 100%를 원청에 의존하는 사내하청의 경우 하도급법으로 규율하는 부품 벤더와 달리, 노동법상 파견업종으로 봐야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조업계의 자정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경제포럼도 불평등과 노동시장 문제 등 사회적 이슈를 중요하게 논하고 있다.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지만, 경제 회복만 부르짖던 때와는 시대적 요구가 다른 것이다. 논란의 중심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 변화를 이끌 강력한 주체인 산업계의 전향적인 응답이 절실해 보인다.   
 
최서윤 산업1부 기자(sabiduria@etomato.com)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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