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국내 정유업계가 코로나 19사태로 더욱 암울한 분위기다. 국제 유가와 함께 이미 손익 분기점을 밑도는 정제마진이 더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석유 수요도 급감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연초 오름세를 보이던 정제마진은 국제 유가 급락과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가 겹치면서 다시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마이너스였던 싱가포르 복합정제 마진은 올해 1월 둘째 주 배럴당 0.2달러를 저점으로 상승하면서 2월 둘째 주 4달러까지 올랐다. 이후 한 주 만에 배럴당 3달러로 떨어졌고 2월 마지막 주에는 배럴당 2.3달러까지 내려왔다.
SK 울산 콤플렉스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 1단계 합의로 석유제품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면서 오름세를 타다가 코로나 19 확산으로 공포심이 커지면서 내림세로 급반전한 것이다.
정유사 수익 관점에서 보면 손익분기점(BEP)을 넘어서려다 좌절된 셈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료인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제외한 것으로 수익성을 보여주는 핵심지표다. 국내 정유사의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4~5달러로 알려져 있다. 정제마진이 이보다 낮으면 손해가 난다는 의미다.
정제마진은 작년 10월 셋째 주부터 배럴당 4달러를 넘어서지 못했고 SK이노베이션과 S-oil, 현대오일뱅크 등은 정제마진 직격탄을 맞으면서 지난해 영업이익이 20~40%가량 줄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재고 평가 손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악재다. 작년 12월 평균 배럴당 65달러에 육박했던 두바이유 가격은 이번 달 51달러로 21% 이상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서부텍사스산유(WTI)도 60달러 안팎에서 47달러 수준으로 22% 가까이 떨어졌다. 정유사들은 통상 2~3개월 전 사둔 원유를 가공해 판매하는 데 국제원유 가격이 하락하면 원유의 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보게 된다.
석유 수요도 역대급 감소가 예상된다. 시장 조사업체 IHS 마킷은 최근 올해 1분기 글로벌 석유 수요가 전년 동기와 비교해 일평균 380만배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19 감염이 가속하면서 수요가 위축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전까지 분기별 감소 폭이 가장 컸던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분기 기록한 370만배럴이다.
IHS 마킷은 모든 2분기에도 코로나 19의 부정적인 영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중국 내 항공편과 아시아를 오가는 장거리 노선이 줄면서 중국 수요가 적다며 2월 중국에서 도로와 철도, 항공, 항만을 이용한 상업용 여객 여행이 전년보다 80%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짐 버크하드(Jim Burkhard) IHS 마킷 석유 시장 부사장은 "갑작스럽고 즉각적인 수요 충격이고 감소 규모는 전례가 없다"며 "올해 하반기 회복이 있더라도 석유 수요가 작년보다는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도 올해 석유 수요가 하루평균 55만배럴 증가할 것이라던 전망을 최근 15만배럴 감소로 바꿨다.
정제마진 약세와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 손실 확대, 석유 수요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유사의 1분기 실적 전망치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2개월전 4330억원 정도였던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현재 717억원으로 83% 감소했다. 특히 최근 1개월 새 80% 가까이 낮아졌다.
S-Oil도 마찬가지다. S-Oil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현재 657억원으로 1개월 전과 비교해 76.5%, 2개월 전보다는 83% 감소했다.
최근에는 적자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5일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를 기존 776억원에서 2552억원 영업적자로 바꿨다.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는 9663억원으로 47% 낮췄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하락을 반영하면 1분기 관련 재고 평가 손실이 3900억원"이라며 "현재의 부진한 정제마진을 고려해 2분기와 하반기 평균 내부 정제마진 추정치도 배럴당 8달러에서 2달러로 낮췄다"라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S-Oil에 대해서는 1분기 930억원 영업이익에서 1140억원으로 실적 전망을 수정했다. 연간 영업이익 예상치는 8800억원으로 37% 낮췄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