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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애 낳기 힘든 사회)임신한 워킹맘 '눈치맘' 되는 이유

(상)"직장인 임산부는 힘들어도 너무 힘들어"

2013-12-19 11:23

조회수 : 6,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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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임신은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 '워킹맘'은 임신이 두렵다. 특히 임신 초기의 경우 입덧이 심하고 유산의 위험도 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첫째는 차치하고,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직장에 전하면 "또?"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런 사정 탓에 임신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일하는 워킹맘도 적잖다. 여성이 출산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이유다. 출산율 제고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손꼽히지만, 난제에 머무르고 있는 배경이다. 뉴스토마토 은퇴전략연구소가 '눈치 보는 임신'의 문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국내 여행사에서 일했던 문 모씨(30세)는 임신 12주 무렵 아찔한 경험을 했다. 열심히 일하던 중 하혈을 한 것.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얼마 전 유산했다는 직장 동료의 소식은 문씨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문제의 발단은 사내에서 임신을 선언하는 직원들이 늘면서다. 고통을 호소하며 휴가를 신청하는 직원이 늘어날 때마다 다른 직원들은 "제발, 그만!"이라며 "여자는 손해다. 앞으로 남자 위주로 뽑자"는 반응을 보였다. 문씨는 이런 분위기에 짓눌린 상태에서 일했다. 임신 사실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티를 내지도 않았기 때문에 유산 위험에까지 노출됐다.
 
문씨의 동료인 김 모씨(30세)도 임신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김씨는 배가 불러오던 무렵 무거운 서류 상자를 옮기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았다. 두말없이 따랐다. 여성인 상사는 낑낑대는 김씨에게 "나 때는 안 그랬다"며 타박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신 중에 시아버지의 상도 치렀다. 상중에도 업무 관련 전화가 쏟아졌다.
 
김씨는 결국 장례가 끝난 직후 출근했다.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밤 11시까지 일하는 날도 부지기수. 김씨의 근무를 대신해주겠다는 직장 동료는 없었다. 문씨와 김씨는 "출산 휴가는 1년 정도 쓸 수 있지만 다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회사는 임신한 내가 사라져도 임신을 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둘은 출산 이후 3~5개월가량 회사를 더 다니다 결국 관뒀다. 문씨와 이씨는 이제 다시 '취준생'(취업준비생)이다.
 
ⓒNews1
 
◇임신초 지나친 노동은 유산율 ↑..자연유산 80% 이상 12주 이내 발생
 
워킹맘들이 임신 초기 유산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자연유산의 80% 이상은 임신 초기인 12주 이내에 발생한다.
 
의학 전문가들은 임신 초기 지나친 노동은 유산율 증가로 이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노준 대한산부인과학회장은 "임신 12주가 지나야 임신낭이 자궁벽에 제대로 부착돼 안전한 임신 상태가 된다"며 "임신 초기에는 비행기 이착륙에도 자연 유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과로를 주의하고 휴가를 적절히 쓰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최근 결혼과 첫 출산 연령이 점차 고령화되면서 임신 초기 유산의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고령 임산부의 경우 과로뿐만 아니라 염색체 이상이나 습관성 유산 등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게 의학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직장에선 임산부들의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뒤에야 신경을 써주는 게 현실이다.
 
이런 배경 탓일까. 서울시가 지난해 7월 개관한 직장맘지원센터에는 한 해 동안 1167건에 달하는 상담이 쏟아졌다. 이들은 대부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으로 인해 직장 내에서 고충을 겪고 있다고 했다.
  
◇눈치 보는 워킹맘.."제도는 있으나 마나"
 
임신 초기의 워킹맘을 보호할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있다. 지난해부터 개정 시행된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출산 휴가 90일은 임신 중기와 초기에도 나누어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임신 초기에 "출산 휴가 쓰겠다"고 나서는 워킹맘은 드물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없는 근로 환경 탓이다.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선 임신이 퇴사로도 이어진다. 
 
건설 분야 대기업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김모씨(28세)는 "임신 초기에 입덧이 너무 심해 힘들었지만, 휴가를 쓸 수 없어 임신 11주차에 재계약을 포기했다"며 "일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연차나 출산 휴가를 앞당겨 쓰는 것도 눈치를 주면서 못하게 하는 분위기였다"라고 토로했다.
 
심지어 유산을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서모씨(28세)는 가슴 아픈 유산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유산을 했지만 눈치가 보여 유급 휴가조차 단 하루도 쓰지 못했다"며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3교대로 밤낮없이 일하는 동료들이 일을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찬영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주무관은 "출산 휴가를 임신 초기에 앞당겨 쓸 수 있는 현행법을 어기는 고용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며 "그러나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해야 하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휴가를 안 준다고 고용주를 신고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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