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수빈 기자] 급증하는 전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SMR은 전 세계에서 단 한 곳도 상용화된 적이 없는 시설이기에 경제성이나 안전성에 의구심을 품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정부는 여러 신기술을 더한 혁신형 SMR(i-SMR) 지원을 선언하고 있지만, 신규 원전 개발을 위한 안전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인데요. 여야의 극심한 입장 차이로 21대 국회 기한 내 처리되지 못한 원전 지원 관련 법안들이 22대 국회에서 통과될지도 미지수입니다.
지난 5일 오전 국회 깃발이 먹구름 낀 여의도 하늘 아래 펄럭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IAEA, SMR 차등 규제 권고…SMR 규제 마련 '걸음마' 단계
세계적으로 SMR이 개발되고 있지만, 운영 허가가 떨어진 곳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 세 나라뿐입니다. 미국의 경우 SMR을 비롯해 원자력발전소를 빠르게 만들 수 있도록 촉진하는 원자력 발전법이 초당적 지지로 통과됐는데요. 미 연방하원은 지난 2월 해당 법안에 찬성 365표, 반대 36표를 던졌습니다. 이에 미국의 SMR 개발에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입니다.
다만 대만의 경우 상당한 전력 소비를 야기하는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음에도, 차이잉원 전 총통이 지난 2016년 취임 당시 2025년까지 대만 내 모든 원자력발전소 6기를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한 계획이 유효합니다. 이렇듯 원전 산업은 국가별로 철학이 달라 규제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데요. 특히 원전은 규제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돼야만 하는 기술입니다. 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2022년부터 SMR 규제 지침 개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현재 IAEA는 각 국가에게 SMR에 차등 규제를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지난 2020년 대형 원전과 SMR의 규제를 분리, SMR 사업화에 수월한 상황입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SMR 상용화를 위한 규제 연구가 최근에 시작되는 등 혁신형 SMR에 맞는 규제 마련은 걸음마 수준입니다.
특히 SMR은 기존 대형 원전과 다른 설계가 적용되는 만큼 SMR에 적합한 안전 규제 기준도 새로 제정돼야 하는데요. 정부는 SMR 등 차세대 원자력을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선정, 집중 투자하기로 했음에도 SMR 규제기준개발을 전담할 SMR 규제연구추진단은 올해 5월에서야 발족됐습니다.
이에 이상원 한국수력원자력 처장은 지난 11일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회의실에서 열린 ‘민간 R&D 협의체 규제혁신 간담회’에서 “국내 SMR 분야 인허가와 규제 체계는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실정”이라며 “SMR 조기 상용화를 위해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6월 26일 대구시 산격청사에서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야 정쟁에 22대 국회 고준위 특별법 처리도 미지수
SMR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과제도 남아있습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방사선 폐기물은 방사선 물질의 오염된 정도에 따라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 네 단계로 분류하는데요. 국내에서는 지난 1978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에 들어간 후 26년 동안 원전이 가동됐으나 핵연료 폐기물을 영구 처리할 시설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지난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고준위 특별법은 방사선이 강한 원전폐기물의 저장시설인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확충을 골자로 합니다.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이 통과돼도, 방폐장 완공까지 37년이 걸리는데요. 그러나 저장 시설의 저장 용량 등을 두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습니다.
이후 고준위 특별법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습니다. 22대 국회 개원일인 지난 5월 30일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또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 역시 고준위 특별법을 제출했는데요. 국회 개원 기념식 일정까지 불투명해지는 등 여야의 강대강 대치정국이 고질화되면서 또다시 ‘정쟁성 법안’에만 매몰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여기에 안전성 등을 이유로 분출하는 SMR 건립 반대 목소리 등 넘어야 할 산이 남아있습니다. 법적으로 SMR은 대형 원전과 동일한 규제를 받습니다. 이로 인해 방사선비상계획구역 규정인 20~30km 내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동의를 얻고, 대피소와 대피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대형 원전 건설에는 통상 부지 확보부터 준공까지 약 167개월이 소요되는데요.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대로라면 올해 부지 확보에 착수해야 합니다. 이에 여권 소속 단체장이 집권한 대구시는 군위 첨단산업단지에 SMR 건설을 추진한다는 취지의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SMR 유치에 적극적입니다.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시민 수용성이 크게 낮아져 부지 확보가 어렵다는 점인데요.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달 26일 대구시 산격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기자간담회를 통해 “SMR은 지하 40미터에 건설하고 그 상부는 SMR을 운용하는 회사 건물이 들어선다”라며 “(오염수가) 낙동강으로 배출되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소보다 위험도가 10분의1로, 사고가 날 확률은 10억분의1”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럼에도 대구환경운동합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지자체는 원전SMR 확대가 마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열쇠인 것처럼 다루지 말아야 한다”라며 “핵발전은 청정에너지원이 아니라 위험하고 부정의한 에너지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최수빈 기자 choi3201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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