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삼성, 현대차 등 자본리쇼어링과 대규모 반도체, 전기차 국내 투자 약속에도 여전히 RE100(신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에 대한 전망은 어둡습니다. RE100 달성이 쉬운 해외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어, 국내선 산업공동화 우려가 공존하는 실정입니다. 실제 해외공장과 비교해 국내 공장의 RE100 달성이 어려워 수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현대차의 내부 분석 결과가 처음 전해졌습니다.
RE100 달성 속도 '거북이 걸음'
13일 공영운 전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제특보)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민생경제와 혁신성장포럼’에서 이같은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공 전 사장에 따르면 현대차는 전세계 11개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 미국, 중국, 체코, 슬로바키아, 인도, 브라질, 러시아, 멕시코, 터키, 인도네시아 등입니다. 현대차는 이들 공장의 RE100 전환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봤습니다. 그 결과, 국내 공장이 전체 생산량의 50% 정도 차지하는데 RE100 전환 속도는 가장 느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개발도상국에 생산법인이 존재함에도 한국이 가장 늦다는 충격적 결과입니다. 신재생에너지 조달 시 가격 등을 종합 비교해서도 가장 늦고, 가격을 배제하고 전력공급만 비교했을 때도 꼴찌였습니다.
현대차는 국내 생산 70%를 해외 수출해야 설비 가동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70%에 미달하면 국내 공장의 풀가동이 어렵고 고용유지가 안 됩니다. 즉, RE100 달성이 힘들어 수출이 차질을 겪고 고용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현대차의 협력사들도 유럽의 탄소국경세 등을 고려해 RE100 전환해야 합니다. 현대차의 1차 협력사가 450개, 2차 2000여개, 3차가 7000여개를 넘습니다. 이들 협력사 서플라이체인 모두 현대차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어 문제가 심각합니다.
공 전 사장은 “최근 평판리스크가 증대되는 조짐도 있다”며 “한국이 워낙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은 게 국제적 논의 대상에 오르고 있다. 제조업이 강한데 RE100은 극도로 낮다는 게 국제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한국은 ‘기후빌런’이란 이야기가 자꾸 나와 차후 평판리스크가 되고 투자 유치에도 장애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삼성도 비슷한 형편입니다. 박주민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9월초쯤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현장의 어려움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20년간 국내 300조원 이상 반도체 투자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현대차도 2026년 말까지 국내 68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들 투자 약속이 이행되려면 관련 인프라부터 갖춰져야 합니다.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RE100 달성 노력을 하지만 정부 도움 없으면 약속을 지킬 책임도 사라집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당장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를 짓는 방향으로 정부 허가를 얻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전력은 송전망을 확충해 원전을 끌어다 쓴다는 게 정부 복안입니다. 이 계획 대로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RE100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구매 등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13일 더불어민주당의원들이 RE100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 모습. 왼쪽부터 박지혜 의원, 박주민 의원, 공영운 전 현대차 사장. 사진=이재영
“풍력·태양광 벨트 만들자”
더불어민주당은 해안가에 풍력과 태양광 클러스터를 만들어 일자리와 RE100을 함께 해결하자는 게 당론입니다. 공 전 사장은 “신재생에너지 정책과 국토균형발전 전략을 결합시켜야 한다”며 “신재생에너지 생산이 호남, 영남 지역에 편중돼 있고 산업은 다른 데 있어 불균형한데,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에 산업을 유치해 국토균형발전 전략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RE100 때문에)앞으로 기업이 해외로 도망 갈 가능성이 많다.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에 기업이 찾아가게 돼 있다”며 “에너지 생산지와 소비지가 다르면 송배전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태양광, 풍력 투자보다 송배전망 건설에 돈이 더 많이 든다. 생산, 소비를 가깝게 만들면 그리드패리티 투자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PLAN 1.5 공동대표이사)도 “국내 기업이 경쟁기업들보다 재생에너지 사용 여건이 용이치 않아 뒤처지고 있다”며 “세계 평균 RE100 이행률이 50%인데 우리 RE100 가입 기업들은 12% 수준에 그친다. 글로벌 전체 사업장을 합친 숫자이고, 국내만 보면 9%에 불과하다”고 짚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미국과 유럽의 주요 반도체 기업은 2030년(미국 인텔, 독일 인피니온,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RE100 달성을 선언했습니다. 대결이 심한 대만 TSMC도 삼성전자(2050년)보다 빠른 2040년으로 잡았습니다.
대기업보다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중소 협력사는 더욱 절박합니다. 박 의원은 “(거래처로부터)RE100 요구가 왔을 때 다른 납품업체를 물색하거나 거래 중단될 가능성이 중소기업일수록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때문에 “제조기반이 해외 유출될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동남아, 중국 등으로 옮기겠다고 검토하는 기업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사업장에서 훨씬 저렴하게 재생에너지 조달이 가능해서 그런 것 아닌가 판단된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이 미국과 유럽 내 탄소중립산업 육성 움직임도 가속화돼 국내 기업 제조기반을 해외에 옮기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우려했습니다.
한편, 윤석열정부는 RE100에 원전을 포함시킨 CF100(무탄소전원 100%)을 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해선 유럽에서도 논쟁이 활발합니다. 원전 비율이 발전원의 50%를 넘어서는 프랑스가 밀고 있고 독일이 주도적으로 반대해온 상황입니다. 그린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대표적입니다. 최종 합의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을 짓고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쓰는 조건을 붙여서 원전을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조건 달성이 어려워 원전 문제는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입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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