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미군 기지 내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독일의 유엔군사령부 가입 기념식을 말한다. 기존 유엔사 회원국은 6.25전쟁 때 전투병을 보낸 14개국과 의료지원단을 보낸 3개국을 합쳐 17개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투병 파병 14개 국가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필리핀, 태국 등이 포함되어 있고, 의료지원 파견국에는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가 있다. 독일도 의료진을 파견했으나 부산에 도착한 시점이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인 1954년이었기에 ‘6.25전쟁 의료지원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2018년 6월 문재인 정부에 의해 의료지원국으로 추가 지정을 받았고, 이번에 다시 18번째 유엔사 회원국의 자격까지 갖게 되었다. 원래 독일의 가입 시도는 2019년에 있었으나 당시 문재인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마침내 성사된 것이다. 독일이 끝이 아니라 룩셈부르크 등 추가 가입 여지도 거론되고 있고, 정보공유, 연합훈련 참여 등 한국 정부에 대한 유엔사 회원국들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유엔사의 위상과 역할 강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것이 갖는 함의와 한국의 외교·안보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1950년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창설된 유엔사는 현재까지 정전협정 유지와 유사시 전력 제공 임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즉, 평시에는 휴전선 이남의 정전협정 이행을 감독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유사시에는 한국에 파견되는 유엔 회원국 군대에 대한 통제 및 지원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유엔사는 그 책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다분히 상징적인 존재에 머물러 왔다. 남북한 간 위기 상황에서 나름대로 의사소통 채널로 기능해 오긴 했지만, 유엔사는 북한의 심각한 정전 체제 위반행위를 억제·교정하는 데 한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을 계기로 대한민국 방위 임무가 유엔사에서 연합사로 전환됨에 따라 유엔사의 위상과 역할이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변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2003년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유엔사 기능 확대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2005년 라포트 유엔군 사령관이 회원국 확대를 강조했고, 2007년 벨 사령관은 유엔사를 항구적이며 다국적 연합군으로 발전할 필요성까지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에 대응하고 향후 안보상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유엔사의 전략적 가치를 미국이 인지하게 된 것이다. 유엔사를 확대, 강화하려는 미국의 정책은 이후 유엔사 재활성화(UNC Revitalization)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2017년 브룩스 사령관은 유사시에 대비한 전력 제공국들의 참여 확대를 강조했고, 2018년엔 최초로 유엔사 부사령관을 미군이 아닌 외국군 장성이 맡는 조치가 이루어진 바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반대하던 독일 가입이 윤석열 정부에서 성사되었다. 유엔사 확대·강화를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요구에 진보정부는 제동을 걸었고 보수정부는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유엔사 강화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한반도 유사시 병력과 물자를 제공할 의지를 보이는 회원국의 확대와 이를 위한 체제 정비는 대북 억제와 지역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별도의 안보리 결의안 채택 없이 유엔의 권위를 빌어 대한민국을 지원할 수 있다는 이점도 제기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유엔사 강화는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창설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미국 합참의 단독 통제를 받는 다국적 사령부로서 미측의 독자적 영향력을 유지, 강화할 수 있는 기제다. 우리 입장에선 한반도 안보에 대한 자율성과 독자성이 제약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전작권이 환수된 이후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런 측면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유엔사 강화는 나토와 인도·태평양을 연계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이 AP4 국가(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로서 나토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토의 핵심 국가인 독일이 인도·태평양에 관여하는 제도적 통로가 열린 모습이다. 문제는 지정학적 중간국인 대한민국이 대중, 대러 관계 악화를 감수하며 이런 대결적 진영화 흐름에 첨병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또한, 유엔사 확대가 유사시 전력 제공국 확대라는 관점에서 정당화되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유엔사 회원국 중 누가 얼마나 실질적인 군사적 기여를 할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물론 유엔사를 당장 해체해야 한다거나 그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평시 정전관리, 유사시 전력제공이라는 유엔사의 기능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 실질적 의미 이전에 정치적, 상징적 차원에서의 효용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유엔사의 현재 위상과 역할을 넘어 이를 변모시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반도 문제를 이렇게 국제화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것이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는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전략적 스탠스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최선일지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대결과 혼돈의 시대일수록 이런 기본적 질문에 대한 점검 없이 진영외교에 몰두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할 것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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