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자신이 스토킹하던 여성과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태현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오권철)는 12일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태현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태현이)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살인은 우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피해자 A씨) 가족 모두에 대한 살인은 계획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사전에 계획했다고 진술한 큰딸(A씨)에 대한 범행을 위해서는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을 반드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며 "흉기와 청테이프만 가지고 이웃 주민 모르게 피해자 가족을 제압하기 어려워 저항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현이 지난 3월 23일 A씨 동생 B씨의 목숨을 앗아간 범행 수법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하지 않았다면 실행하기 어렵다"며 "귀가한 어머니에 대한 범행은 동생에 대한 범행에 뒤따른 것이었으므로 우발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김태현이 미리 세운 계획에 따라 A씨 가족을 제압하되, 여의치 않으면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도고 봤다.
재판부는 김태현에 대해 "극단적인 인명경시 성향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동생인 피해자는 영문도 모른 채 한 시간 동안 공포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했고, 어머니는 딸이 살해당한 모습을 목격한 것도 모자라 큰 딸도 살해당할 것을 예고 당한 상태에서 숨을 거뒀다"고 지적했다.
A씨에 대해서는 "자신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소중한 가족들이 살해됐음을 전부 안 상태에서 죄책감과 고통 속에 죽었을 것"이라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더불어 추억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유족들의 입장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이 지난 4월 9일 오전 서울 도봉구 도봉경찰서에서 검찰 송치 전 취재진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재판부는 김태현이 벌금형 외에 범죄 전력이 없고 도주하지 않은 점, 법정에서 유족에게 사죄하고 반성문을 쓴 점, 기타 양형 조건과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재판부가 김태현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안된다"를 수차례 외치고 "명철한 판단을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담당 검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느라 한동안 법정에서 나오지 못했다. 검사는 "판결문을 받으면 검토해서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A·B씨의 고모라고 밝힌 유족은 취재진에게 "사형을 선고해도 모자란 살인마에게 무기징역이 웬 말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태현의 변호인은 이날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항소 여부에 대해 "판결문을 검토해 보고 피고인과 접견해서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현은 지난해 11월 알게 된 여성 A씨가 연락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스토킹 하다가 지난 3월 23일 집으로 찾아가 A씨 어머니와 여동생, A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A씨가 올해 1월 연락을 차단하자, 2월까지 공중전화와 타인 명의 전화, 채팅 앱 등으로 연락한 혐의(경범죄처벌법 위반)도 있다.
이밖에 A씨 살해를 위해 상점과 마트에서 청테이프와 과도를 절취한 혐의(절도), 상품 배달을 가장해 A씨 집에 침입한 혐의(특수주거침입), 범행 후 A씨 소셜 미디어에 접속해 대화 내용과 친구 목록을 지운 혐의(정보통신망침해 등)도 받는다.
노원 세모녀 살인 사건 유족이 12일 오전 서울북부지법 청사 앞에서 범인 김태현의 무기징역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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