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민족은 내 민족…죽을 때까지 봉사할 것"
동양철학에 관심 많던 이탈리아 사제
한국서 28년간 소외층 위한 '급식 봉사'
"내 육신 때 다하면 한국 의학도 위해 내놓을 것"
2021-12-14 06:00:00 2021-12-14 06: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한국 땅을 처음 밟은 1990년 5월 12일 스튜어디스가 김하종(본명 빈첸시오 보르도) 신부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김 신부는 “이 순간부터 이 땅의 민족은 내 민족이고, 죽을 때까지 이 나라에서 봉사하며 살 것이다” 다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양철학에 관심이 갔다. 특히 한국 천주교 역사를 공부하며 이탈리아에서 사제활동을 하던 중 ‘한국에서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김 신부는 한국에 와서 1993년 경기도 성남에서 독거 어르신을 위한 급식소 ‘평화의 집’ 운영했다. 그러다 1998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한국이 휘청였다.
 
IMF 여파로 노숙인들이 급증했다. 김 신부는 IMF를 기점으로 자신과 함께 봉사했던 마테오 형제의 어머니 본명 ‘안나’ 이름을 딴 ‘안나의 집’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실내 무료급식소였다.
 
'안나의 집'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이동 쉼터 '아지트'. 사진/안나의 집
 
김 신부의 하루는 무척 바쁘다. 매일 아침부터 800여명분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식자재를 구하고, 음식을 만들고, 배식을 한다. 노숙인들에게 배식을 하면서 노숙인 자활시설과 리스타트 자활사업을 시작하게 됐고, 자연스레 청소년들의 삶에도 크게 관심을 가졌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비극적인 삶을 막기 위해서다.
 
김 신부는 청소년 쉼터부터 청소년 자립 지원관, 청년쉐어하우스, 이동식 쉼터 ‘아지트’까지 운영 중이다. 아지트는 매주 수~금요일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성남지역과 경기도 광주지역 등에서 거리의 청소년에게 맞춤형 상담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게 매일 한국에서 숨 가쁘게 살아온 김 신부는 2015년11월 법무부가 특별공로자에게 부여하는 대한민국 국적 증서를 받았다. 한국에 온지 25년만이었다. 김 신부는 “한국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김하종의 김씨는 ‘성남 김씨’인데 성남은 한국에서 나의 고향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나의 육신이 때를 다하면 한국의 젊은 의학도들을 위해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안나의 집' 건물. 사진/안나의 집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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