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이혼 상대방의 양육비 지급 강제 수단이 불충분하다며 부모들이 낸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련 입법이 꾸준히 있어왔고 헌법상 입법 의무가 구체적이지도 않다는 이유다.
헌재는 23일 양육비해결모임(양해모)이 국가를 상대로 낸 진정입법부작위 헌법소원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진정입법부작위는 입법자가 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을 해야 함에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를 뜻한다.
재판부는 "헌법 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일반적 과제를 규정했을 뿐, 청구인 주장 같이 양육비 채권의 집행권원을 얻었음에도 양육비 채무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이행을 용이하게 확보하도록 하는 내용의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입법의무를 부여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헌법상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입법 의무에 따라 1990년 이후 양육 관련 민법이 개정·신설됐고 2014년 양육비 이행법이 만들어지는 등 입법 노력도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양육비 이행법 개정으로 감치 명령에소 채무 이행을 안 할 경우 운전면허를 정지할 수 있는 제도, 출국금지 요청 조항, 양육비 채무자 신상정보를 여성가족부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조항, 감치 명령 1년 내에 채무 미이행 시 처벌하는 조항 등이 올해 6월~7월 시행된 점도 각하 근거였다.
재판부는 "입법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민법, 가사소송법, 양육비이행법을 통해 양육비 이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마련하는 등 그 입법 의무를 이행해왔다"며 "실제 양육비 이행이 청구인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입법 외에 양육비 대지급제 등 양육비 이행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또 다른 내용을 규정할 헌법상 입법의무가 헌법 해석상 새로 발생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입법부작위로 재산권이 침해된다는 주장 역시 양육비 채권 관련 입법 조치가 이미 진행돼 헌법상 입법 의무가 새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봤다.
헌법소원을 낸 단체는 헌재가 현실을 모른다며 비판했다. 강민서 양해모 대표는 헌재 결정선고 후 "지난 23년 간 스물아홉 번 소송을 해 봤지만 (양육비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서게 됐다"며 "(아이 아빠에 대한) 아무런 제재가 없었는데 무슨 법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느냐. 판사님들이 현실을 너무 모르신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판사님들은 현행법으로도 양육비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안 주고 도망가고 숨으면 못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법원의 판결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모르시는 것 같아서 좀 더 알리는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양해모 법률 대리인 이준영 법률사무소 KNK 대표변호사는 "양육비 미지급률이 70~80%인데 그 정도면 법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주고 채무자에게 받아내는 대지급제가 없어 양육자와 비양육자 간 갈등이 예정된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갈등이 예정돼 있는 것이고 그런 부분에서 현실을 도외시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양해모는 지난 2019년 2월 양육비 미지급이 당연시 돼 아이들의 생존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진정입법부작위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부동산등기법 위헌확인, 최저임금법 위헌확인, 공직선거법 위헌소원 등 12월 심판사건에 대해 선고 한다. 사진/뉴시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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