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유승 기자] 병원에서 처방받은 보습크림을 실손의료보험 보상에서 제외하는 보험사들이 늘고 있다. 도덕적해이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약속한 듯 줄줄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키로 하면서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을 줄이기 위해 담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이른바 'MD크림(점착성투명창상피복재)'의 실손보험금 청구에 대해 면책사항으로 보험금 지급 기준을 변경하고 나섰다. 지난 3일
현대해상(001450)을 시작으로
DB손해보험(005830)(6일), KB손해보험(10일) 등이 줄줄이 관련 보험금 지급을 거부키로 결정했다.
아토피성 피부염 등에 사용하는 MD크림은 그동안 의료기기로 여겨져 의사의 처방으로 실손보험에서 보상이 가능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MD크림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재판매하는 보험금 악용 사례가 이어지자 보험금 지급 거부를 검토하는 보험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일부 병원의 경우 브로커와 짜고 보습크림을 가입자들에게 대량으로 청구하도록 부추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손보사의 MD크림 관련 보험금 지급액은 4년 만에 약 10배 급증했다.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 거절 근거로 대법원의 판례를 내세우고 있다. 보습크림 소송과 관련한 2019년 8월 대법원 판결(2018다251622)에는 보습크림은 의사가 직접 치료를 하지 않고 처방만 내렸기 때문에 의료행위로 볼 수 없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왔다. 실손보험의 입·통원 제비용은 의사가 주체가 되는 의료행위로부터 발생한 비용만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보험금 지급 거절이 선량한 가입자들까지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보험 설계사는 "아토피 치료로 MD크림을 처방받는 고객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면서 "잘못을 한 사람들에게만 처벌 강도를 높여 제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보상 자체를 막아버리는 조치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금융감독원도 실제 피부질환자가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지급 권고 가이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감독 국장은 "무조건 보험금 지급을 막는 행위 자체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보험금 지급을) 가려서 막을 수 있어야 하는데, 가릴 수 있는 방법이 현재 없다면 금융당국 등 관련 관계자들이 소비자들을 위해서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인식을 하고 그에 따른 대책과 홍보로 이런 일이 다시는 나오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보험산업이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보습크림을 실손의료보험 보상에서 제외하는 보험사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어린이가 아토피의 원인을 찾기 위해 피부단자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권유승 기자 ky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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