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죄인가)③"'법적 공백' 오래 될수록 산모만 위험해져"
법조·의료·여성계도 제각각, '낙태허용 기준' 달라
"보완 입법이 최소한의 안전장치" 명제엔 전부 공감
"대선 눈치 보는 정치권, 외면하면 '셀프낙태' 못 멈춰"
2022-01-11 06:00:00 2022-01-11 08:43:36
[뉴스토마토 박효선ㆍ이범종 기자] 임신중절(낙태) 입법공백 장기화 속 불법 ‘셀프 낙태약’ 시장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 가운데 어린 소녀들은 음성적 낙태 시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법조계와 의료계, 여성계 등은 각론에서 다소 이견을 보였으나 입법 공백부터 메워야 한다는데 모두 입을 모았다.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 즉 낙태 관련 입법화 및 처벌 기준 정비부터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의료계에선 모자보건법상 임산부 허용주수를 24주에서 22주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에덴산부인과 원장)은 “임산부 건강을 위해 (낙태) 허용주수를 22주로 단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22주 이후라는 기준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22주 이후)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자보건법의 배우자 동의가 있어야 임신중절이 가능하다는 조항도 삭제돼야 한다”며 “강간의 경우 입증책임을 완화해 성폭력범죄 행위로 인해 임신했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의사가 신념과 종교적 이유로 낙태를 거부할 수 있도록 의료법상 진료 거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도 필요하다”며 “법률을 개정함에 있어 어떤 형식으로든지 산부인과 의사들 의견이 존중돼야 하고, 낙태죄를 부활시켜 의사와 임산부를 처벌하려는 어떠한 입법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임신중단 의료 현장에 대해서는 “최근 낙태 시술을 원하는 환자가 현저히 줄어 낙태를 원하는 임산부를 보기 힘들다”면서도 “낙태약에 대한 단속이 없어 (임산부들이) 불법으로 복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임신중단 낙태수술 자체는 양지화가 되고 있으나, 약물에 대해서는 낙태 관련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계는 임신 허용주수 제한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며 입법 공백 장기화에 대한 답답함을 내비쳤다. 박지영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는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이후 법적으로 의료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임신중절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병원에 가는 등 이런 정보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제공되지 않는다”며 “여성들이 직접 찾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정보들은 공공기관이 아닌 일반 병원에 있다 보니 사문화되면서 병원들이 부르는 대로 (임신중절) 가격이 달라지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주수별로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사실상 낙태죄 폐지 이전과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 등이)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여성 건강권에 대한 고려를 전혀 안 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가기관은 적극적으로 (낙태 관련 법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임신 중지 자체가 권리로서 도입돼야 한다”며 “여성들이 공공의료시스템 안에서 (임신중지 치료 등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먹는 낙태약'인 미프진(Mifegyne). 사진/뉴시스(엑셀긴)
 
학계와 법조계는 2020년 10월 법무부 입법예고안을 기준으로 임신주수에 따른 허용·처벌 기준 정비가 가장 시급하다고 제시했다.
 
강동욱 동국대 법무대학원장은 “우리나라에선 아이가 태어나면 나이 1살이라고 한다”며 “그만큼 뱃속에 있는 태아의 생명을 인정해주는 곳이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강 원장은 “(법무부의 주수제한이) 외국 입법례를 기준으로 한 것일 텐데 그 이상의 절충안이 도출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의 ‘입법 불비’ 상태를 너무 오래 놔두는 것은 (산모에게) 너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치권에선) 워낙 민감한 주제다 보니 아무래도 대선 이후에라도 후속 입법 논의가 이뤄질지조차 불투명하다”면서 “하지만 시급한 문제인 만큼 법무부 등 정부 주도로 (낙태) 허용범위를 확정한 법안을 통과시켜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출신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도 “아무래도 대선을 앞두고 낙태 문제는 유권자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정치권에서 꺼내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입법 공백 상태가 장기간 방치되면 불법적으로 (셀프낙태)약이 계속 유통이 되고, 이런 ‘사각지대’를 그대로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낙태법) 법안부터 정비가 돼야 낙태 의약품은 어디까지 허용될지, ‘미프진’(인공임신중절약)과 같은 의약품을 어떻게 제도권 내로 가지고 올 수 있는지, 건강보험은 어떻게 적용할지, 의사의 낙태 시술 거부권 등 이런 제정안들도 하나씩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힘든 주제이지만 (낙태 허용 입법화) 정리를 반드시 하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9년 4월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와 유지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각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ㆍ이범종 기자 twinseve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