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국민은행이 채용비리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 후속조치에 손을 놓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정입사자 수십명이 버젓이 근무 중이며, 피해를 본 탈락자들은 어떤 구제책도 받지 못하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월14일 대법원은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된 인사 담당 부행장과 본부장, 부장, 팀장 등 4명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다. 2018년 1심 판결 이후 5년 만의 판결이다. 이들은 남성 합격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 서류전형 성적을 조작했으며, 면접전형에서는 청탁 대상자 20여명을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시켰다. 특히 남성 지원자의 성적을 올리면서 100명이 넘는 여성 지원자들이 서류 과정에서 불합격 처리됐다.
하지만 채용비리에 연루된 다른 은행들이 부정입사자를 퇴출시킨 것과 달리 국민은행은 사실상 이 문제를 덮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은행권 채용비리 혐의와 관련해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난 곳은 우리은행과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국민은행이다. 이들 은행에선 그룹 회장 또는 은행장의 결단으로 채용비리에 연루된 부정입사자 전원을 퇴사조치했다.
국민은행 서울 여의도 본점의 로비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민은행 측은 채용비리로 적발된 다른 은행과 달리 '남녀 비율 조정' 문제라는 점에서 '채용비리'나 '부정입사자'라는 잣대를 적용하기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입사 후 5년 넘게 근무한 직원을 이제와서 퇴사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며 "입사자들 입장에서는 은행의 공식 채용 절차를 거치고 입사했는데 퇴사를 납득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채용비리 관련 피해자 구제에 대해서도 "피해자를 특정하기 못하기 때문에 불합격자에 대한 구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당시 지원자들의 이력서가 폐기됐기 때문에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채용건이 재거론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시각도 내놓는다. 채용비리 논란이 최초 불거졌을 때 윤종규 회장은 국민은행장을 겸임하던 시기였고, 윤 회장의 종손녀(누나의 손녀)를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산 바 있다.
종손녀 채용 과정에 공모 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 윤 회장이 채용비리 관련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부정입사자 대상자를 추려내는 과정에서 특혜 채용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의 종손녀는 지난 2015년 지역할당제를 통해 가점을 받고 채용됐으며, 지방 영업점에서 근무 중이다.
KB금융 노조와 시민단체들 역시 윤 회장의 연임 과정에서 친인척 채용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국민은행은 이에 대해 "윤 회장의 종손녀 채용 건은 무혐의를 받았으며,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윤 회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이후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당시 국민은행장이던 윤 회장은 3연임에 성공했고, 국민은행장은 두번 교체되면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졌다.
다른 은행들 역시 대법원 확정 판결때까지 채용비리 후속 대응을 미뤘지만, 국정감사에서 국회의 지적을 받은 뒤 부정입사자들을 모두 내보냈다.
채용비리에 연루된 다른 은행 관계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한 이들에 대해선 해고가 정당하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면서 "경영진 입장에서 의지를 갖고 결단을 내리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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