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학생들 트라우마 더 크다"
참사 후 9일 지났지만 학교 현장에선 여파 여전
초반 참사 관련 사진·영상에 그대로 노출
전문가 "청소년 예민·민감…PTSD 나타날 수 있어"
"초·중·고 발달 단계 따라 맞춤형 대책 세워야"
2022-11-08 06:00:00 2022-11-08 06:00:00
[뉴스토마토 장성환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 관련 사진이나 영상이 SNS 등을 통해 퍼지면서 정서적으로 취약한 청소년들에게 더욱 큰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참사 트라우마의 위험성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학생 발달 단계에 따른 맞춤형 대책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7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이후 9일의 시간이 흘렀지만 학교 현장은 아직까지 참사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SNS 등으로 참사 현장을 여과 없이 접한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각 학교에 설치된 상담실인 '위(Wee) 클래스'를 찾아 정신적인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 A씨는 "학생들이 이태원 참사 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안전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요즘 학생들은 SNS를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참사 초반 관련 사진이나 영상에 그대로 노출됐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B씨는 "학교에서도 급식을 먹기 위해 줄 설 때 등 밀집된 공간에 학생들이 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예전과 달리 서로 밀거나 밀리지 않게 조심하는 모습"이라면서 "한 학생이 '압사'라는 말을 쓰니 다른 학생들이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학생들도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고 있는 듯하다. '위 클래스'를 찾는 학생도 꽤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현장의 이러한 상황에 대해 걱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 시기의 경우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하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중·고등학생 6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또래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청소년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이태원 참사 관련 내용을 SNS나 방송 뉴스 화면 등을 통해 접하는 것만으로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만수 서울교사노조 전문상담교사협의회 위원장도 "지금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와도 상황이 다르다. 지난 3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학생들의 우울·불안지수도 많이 높아졌고 심리적으로 더 취약한 상태"라면서 "트라우마는 간접 경험한 사람도 겪을 수 있는 만큼 학생들이 SNS 등으로 이태원 참사 관련 사진이나 영상을 계속 접하는 건 좋지 않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이후 9일이 흘렀지만 학교 현장은 여전히 참사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은 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는 모습.(사진 = 뉴시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교육부가 지난주 배포한 '재난 사고에서 학생의 마음 건강 돌보기' 자료 가운데 '학생이 재난 사건 정보에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해당 자료는 재난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생이 SNS의 활용을 조절하도록 안내하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조치로는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곽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좀 더 분명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 이태원 참사 사진이나 영상을 계속 접할 경우 학생들의 정서에 어떤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히 설명하라고 하는 등의 관련 지침을 내려야한다"며 "학생들이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하던 시기에 정부가 이와 연관된 내용을 자세히 안내한 것처럼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따라 맞춤형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위원장은 "학생들의 경우 성인과 다르므로 발달 단계에 따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크게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으로 나눠 각 발달 단계에 맞는 트라우마 조사를 진행하고 적절한 대책도 만들어야 한다. 별도의 조사는 학생들이 부담스러워 할 수 있으니 원래 진행하던 학교폭력 설문조사 등에 문항을 추가하는 방법 등을 활용해 우회적으로 조사하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
 
이어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혼날까봐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사실을 숨기고 있는 학생이 있을 수 있다"며 "이런 학생들을 찾아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는 작업도 필요하다. 트라우마는 보름에서 한 달 이상 시간이 지난 이후에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그에 맞는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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