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사례 1. 회사원 A씨는 거래처 사장의 가족이 근로장려금을 수령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과 함께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해당 가족은 이미 회사 임직원으로 재직, 높은 급여를 받음에도 재산을 여기저기 분산해 관리, 과세당국이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후 나랏돈을 탄다는 겁니다. A씨는 "돈 많은 사람들의 '방법'은 따로 있구나 싶다"라면서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사례 2. 배달라이더인 B씨는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근로장려금까지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궁금해 물어보니 동료들은 "수입을 현금으로 돌리면 된다", "사무실과 잘 이야기하면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라고 귀띔해줬다고 합니다.
정부는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를 돕고자 '근로장려금'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지급 업무는 국세청이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급자의 최대 절반 가까이 부정수급자라는 고발이 국세청 내부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고용률 수치에 눈이 먼 정부의 방관 아래 과도한 대상자 확대와 부정수급 등의 문제를 낳았다는 지적입니다. 국세청 전·현직 관계자들은 그간 일선 세무서 직원들이 근로장려금 제도에 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정부가 이를 귀담아듣지 않고 수수방관해 사태를 키웠다고 증언했습니다.
취재팀이 만난 국세청 내부 고발자는 "근로장려금 수급자 가운데 절반가량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부정수급을 하는 '허수'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도 수급자 중 20%는 허수"라면서 "정부는 근로장려금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고용률 유지' 미명 아래 모든 걸 눈감는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근로장려금을 부정수급할 수 있는 비법들이 공유되고, 부정수급을 주선하는 브로커들까지 활개 칠 정도"라며 "근로장려금 제도를 건드리면 혹시라도 일자리에 영향을 주고 고용률이 떨어질까 무서워 아무도 못 건드리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근로장려금 수급액 급증…지난해 4조4447억
국세청 홈페이지의 '국세정책·제도'를 보면, 근로장려금에 대해 "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 사업자(전문직 제외) 가구에 대해 가구원 구성과 근로소득, 사업소득 또는 종교인소득에 따라 산정된 근로장려금을 지급함으로써 근로를 장려하고 실질소득을 지원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 제도"라고 소개됩니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의지가 있으며 실제 일자리를 구해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실질소득이 많지 않아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국세청에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면, 국세청은 신청자의 재산·소득 등을 따져 수급자를 정합니다. 이때 근로장려금 신청·지급은 개인이 아닌 가구 기준입니다.
국세청은 "근로장려금은 가구원 구성에 따라 정한 부부합산 총급여액 등을 기준으로 지급액을 산정한다"고 설명합니다. 올해 근로장려금을 받으려면 전년도인 2022년 6월1일 기준으로 가구원들의 재산이 2억4000만원 미만이어야 합니다. 또 소득 조건(연 총소득 기준)은 △맞벌이가구 3800만원 미만 △홑벌이가구 3200만원 미만 △단독가구 2200만원 미만입니다. 이 기준에 부합할 경우 △맞벌이 가구 3800만원 미만은 연 330만원 △홑벌이가구 3200만원 미만은 연 285만원 △단독가구 2200만원 미만은 연 165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도가 시작된 2009년 기준 근로장려금 신청자는 72만3937가구, 실제 수급자는 59만720가구였습니다. 신청자 대 수급자 비율은 81.6% 수준입니다. 10여년이 지난 2022년 기준으로는 근로장려금 신청자 510만2300가구, 수급자는 436만2325가구입니다. 신청자 대 지급자 비율은 85.5%입니다. 총지급액은 2009년 4537억원, 2022년엔 4조4447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7월5일 김창기 국세청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급가구 중 상당수는 부적격자"…인터넷에선 '부정수급 사례' 넘쳐
근로장려금 제도는 일할 의욕을 높이고 실질소득도 보장하기 때문에 괜찮은 복지정책으로 보입니다. 허점도 많습니다. 소득을 축소 신고하거나,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지만 세대가 분리된 것으로 속여도 적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근로장려금은 436만2325가구에게 지급됐습니다. 반면 국세청에서 이 업무를 하는 인력은 3500명 남짓. 일일이 부정수급 실태를 살피는 게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국세청 내부 고발자는 "일단 수급 대상자 숫자가 너무 많고 국세청으로선 세금 걷기도 바쁜데, 그걸 직접 다 감시하고 사후 점검하는 인력도 몹시 부족하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신청 가구 대 수급 가구의 비율이 80% 수준인데, 그나마 신청자 중 일부 허수를 걸러낸 게 이 정도"라면서 ''실제 수급 가구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부적격자, 허수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이는 현실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맘카페' 등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재산이 많은데 근로장려금을 탄 사람을 봤다는 목격담, 세대 분리를 해서 근로장려금을 받은 자랑, 소득과 재산을 속이는 비법 등에 관한 글들이 다수 검색될 정도입니다.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재산이 많은데 근로장려금을 탄 사람을 봤다는 목격담, 세대 분리를 해서 근로장려금을 받은 자랑, 소득과 재산을 속이는 비법 등에 관한 글들이 다수 검색된다. (이미지=뉴스토마토)
부정수급 주선 '브로커'까지 활개…혈세 낭비에 추가범죄 악용 우려까지
국세청 내부 고발자는 "심지어 근로장려금 부정수급을 주선하는 브로커들까지 있다"며 "노숙자나 생활이 어려운 노인, 전업주부, 실업자, 백수 등을 꾀어 주민번호를 받은 뒤 중소기업에 그걸 넘겨주고, 그 회사 사장과 작당해 이들이 그곳에 취직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근로장려금을 타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브로커들은 국세청이 근로장려금 수급 실태를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다는 허점을 악용합니다. 자기 주민번호를 브로커에게 넘긴 사람은 실제 일을 하지 않고도 근로장려금을 받으니까 용돈을 버는 꼴입니다. 결국 근로장려금의 원래 정책효과는 왜곡되고 이 과정에서 혈세가 낭비됩니다. 개인정보를 정체불명의 브로커에게 노출시켜 추후 범죄 등에 쓰일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 또한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브로커와 짜고 노숙자·실업자 등의 주민번호를 건네받은 중소기업 사장은 이들을 실제 채용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합니다. 사장은 이들에게 월급을 주는 척하면서 비자금을 축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더해 해당 기업은 나중에 고용증대 세액공제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허위로 취직한 직원이 퇴사하면, 퇴직금으로 모아둔 돈도 사장의 딴주머니로 흘러가게 됩니다. 국세청 내부 고발자는 "M세무법인과 모 인력사무소가 부정수급 브로커로 나섰다가 걸린 적이 있다"며 "아직도 브로커들이 많이 있고 음성적으로 활동한다. 지하철역에 노숙하는 사람들에 접근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이런 브로커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직 고위 관료의 증언도 이어졌습니다. 국세청과 기획재정부 등에서 근무했던 김낙회 전 관세청장은 취재팀과 만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의 경우 비자가 만료되면 더 이상 외국인에게 일을 시킬 수 없으니까 무직의 한국인을 허위로 회사에 취직시켜 놓는 일도 있다"라면서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한 업체는 한국인 이름과 명의를 빌려서 계속 그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고, 이름과 명의를 빌려준 한국인은 근로장려금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 관리·감독 강화 절실하다"
전문가들도 근로장려금 제도의 구조적 허점과 부정수급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은민수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근로장려금은 다른 복지제도와 달리 '정산' 차원으로 지급되는 것이고, 제도가 복잡해서 브로커나 '선수'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며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실업급여 등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제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이런 복잡성의 빈 틈을 노려 도덕적 해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했습니다.
임무송 일자리연대 운영위원장(전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근로장려금이 실제 기대처럼 근로를 유인해 고용률을 높이는 효과를 내려면 제도가 취지대로 운용되도록 정부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그게 제대로 안 되면서 브로커들이 '짬짬이'를 하거나, 법을 아는 자들의 '카르텔'이 돼 세금이 새는 결과가 생긴다"고 지적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 혈세를 재원으로 해서 지급되는 근로장려금에 부정수급이 있다면 상당한 문제"라며 "철저한 검사를 통해 제대로 집행하고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의원은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집중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국세청 "심사 통해서 지급…'허수 50%'는 사실 아냐"
취재팀은 근로장려금 부정수급자가 최대 50% 가까이 되고, 브로커까지 개입하는 조직적인 부정수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내부 고발이 나온 것과 관련해 국세청에 공식입장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국세청은 "근로장려금은 국세청이 내·외부에서 수집한 소득·재산자료 등을 근거로 수급요건(소득·재산요건)을 심사하고, 요건을 충족한 가구에 한해 지급한다"면서 "근로장려금을 지급한 후에도 경정 등으로 소득이 변경된 경우 과다하게 지급된 금액을 환수한다. '허수가 50%, 적게 잡아도 20%'라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근로소득 지급명세서상의 소득을 근거로 4대 사회보험료(건강·고용·산재보험, 국민연금)가 부과되므로 지급명세서를 허위로 제출하기 어렵다"면서 "근로장려금을 부정수급한 경우 사업자는 가산세(1%)뿐만 아니라 형사처벌(2년 이하 징역 등) 대상이 되며, 차후 5년간 근로장려금 수급이 제한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계속)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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