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기업들이 가격을 올려도 너무 올리는 것 같아요. 원·부자잿값 상승이 원인이라지만, 이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식품 가격을 둘러싼 정부와 업체들 간 줄다리기가 무한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식품 업계를 향해 가격 인하 압박 수위를 높이면, 식품 업계가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가격을 높이는 지루한 공방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인데요.
이달 3일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식품 기업 17곳과 외식 기업 10곳의 대표들을 불러 모아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지난 3월에 이어 불과 2개월여 만의 일입니다.
상당히 잦은 감은 있지만,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당부 요청을 마냥 무리라 보긴 어렵습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상치 않다 보니 정부 입장에서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 2월과 3월 각각 3.1%를 기록하다가 석 달 만에 2%대인 2.9%를 기록했습니다.
2%대 물가라지만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아직도 올해 월 평균 대비 비슷한 수준의 상승폭이 유지되고 있고, 특히 농축수산물이 10.6% 뛰며 여전히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탓입니다. 특히 지난달 외식물가 상승률은 3%를 기록했는데요. 외식물가가 소비자물가 평균을 넘어서는 상황도 35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식품 업계의 가격 인상과 외식물가 간 상관관계가 높다 보니, 식품 업계를 향한 정부의 공세는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업계가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제품 가격 인상 행렬에 나선 점도 정부로서는 간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업체들은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하는 흐름 속에 원·부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및 배달 수수료 부담이 커지는 만큼 가격 인상은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분명 맞는 말입니다. 국제 곡물, 유가 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민감한 식품 업계 입장에서 원·부자재 가격 상승은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겁니다. 수익을 내는 것이 의무인 기업에게 "땅 파서 장사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최근과 같이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는 분위기 속에 식품 업계가 이와 상반된 수익을 거두고 있다면, 이는 다시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실제로 지난해와 올해 식품 업계에서 실적 잔치를 벌이지 않는 기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가 이슈가 터질 때마다 업계가 단기간 부담을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기업의 탐욕(Greed)에 의한 인플레이션, 즉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이 한몫했다는 것이죠.
업체들 입장에서는 최근 호실적이 제품 가격을 높여서가 아닌, 각종 제반 비용을 축소시키기 위한 노력, 해외 시장 공략 성공에 따른 것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논리대로라면 원재료 및 환율이 하락하던 당시 식품 가격도 인하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기에 가격이 낮아진 사례는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원·부자잿값 상승 때문에 가격 인상에 나선다는 식품 업계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식품 업계는 물가의 근간을 이루는 먹거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히 큽니다. 특히나 최근 고물가로 시름하는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업계는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가격 결정에 고심을 거듭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충범 산업2부 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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