렐루게임즈의 'B급 혁명' 비결은? "땀과 인공지능"
화제작 '마법소녀 루루핑' 제작사
김민정 CEO·신승용 CTO 인터뷰
크래프톤 AI 게임의 선발대 역할
"AI로 생각 못한 게임 개발, 우리가 증명해야"
2024-07-01 09:00:00 2024-07-01 13:29:52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올해 상반기에도 기라성 같은 대작 게임이 줄줄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파죽지세로 적들을 쓰러뜨린 영광의 게이머라 할지라도 이 작은 게임 앞에선 어김없이 시련을 겪어야 했는데요. 치마 입은 중년 아저씨 '김부장 부장'이 돼 낯뜨거운 마법 주문을 외쳐야 하는 이 게임의 이름은 바로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입니다.
 
게이머들에게 충격을 안긴 이 게임은 인공지능(AI)으로 주문을 외우는 자의 발음과 목소리를 평가해 공격과 방어의 성공을 결정지어 화제가 됐습니다. 이들의 AI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GPT-4o(포오)로 용의자와 대화하는 추리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을 출시하기도 했는데요.
 
이쯤 되면 도대체 이런 게임들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마천루처럼 한 방향으로 뻗어가던 게임사들의 기존 문법을 벗어나, '빌딩숲 사이에 피어난 장미' 같은 게임을 만든 크래프톤(259960) 산하 렐루게임즈의 김민정 대표와 신승용 개발실장을 지난 27일 서울 크래프톤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신승용 렐루게임즈 개발실장과 김민정 대표. (사진=크래프톤)
 
업력 24년 베테랑의 자율 경영
 
김 대표는 렐루게임즈가 '루루핑'을 만들 수 있던 배경으로 독립성을 꼽았습니다. 그는 "정말로 크래프톤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승인 받는 절차는 없지만, 무엇을 만드는지는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크래프톤이 두 사람에게 자율성 강한 AI의 첨병 역할을 맡긴 이유는 업력과 실력,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 추진력 때문입니다.
 
김 대표와 신 실장은 모두 2000년부터 게임 업계에 몸 담은 베테랑입니다.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036570)와 NHN 엔터테인먼트, 라인 플러스 등을 거쳐 2018년 크래프톤에 합류했습니다. 크래프톤에선 국내 투자실장을 지내고, 렐루게임즈의 바탕이 된 'SP(스페셜 프로젝트)2'도 총괄했습니다. 신 실장은 PC 게임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블루홀스튜디오와 넷게임즈 등을 거쳐 2019년 크래프톤에 입사했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부터 AI를 게임 개발에 적극 활용하는 독립 스튜디오 렐루 게임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총원 40명 규모인 이 회사가 도전적인 게임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배경은 AI였습니다. 루루핑의 에셋(게임의 요소) 설계 당시 AI 활용 비율은 90%가 넘습니다. 작품 내 아트 워크와 웹툰 형식의 서사 연출은 원화가 서너 명이 세 달 간 매달려야 하는 분량이었는데요. 이걸 AI를 통해 단 한 명이 해냈다고 합니다.
 
김민정 렐루게임즈 대표가 이 27일 서울 크래프톤 사무실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크래프톤)
 
크래프톤은 지난 2021년 딥러닝 본부를 세우고 언어 모델과 음성 합성, 에셋·모션 생성, 게임 플레잉 AI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각 스튜디오를 지원하는 역할도 합니다. 연초엔 컨트롤타워인 AI 전략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김 대표는 "렐루 게임즈는 그(본사의 AI 연구·개발) 기능이 통합돼 있다"며 "작은 규모지만 내부에서 먼저 유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조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AI 전략 관점으로 보면 렐루게임즈는 별동대, 선발대 느낌"이라며 "본사에서 나왔든 우리가 만든 것이든 외부 것이든 우리 게임에 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와 커스텀 해서(맞춤형으로) 쓰기 때문에 가리지 않고 도움 받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초대 마법소녀 점례 할머니의 공격 주문은 여성 개발자 세 명의 목소리를 합쳐 만들었다. (이미지=크래프톤)
 
오직 재미를 위한 AI
 
AI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크게 일자리 도둑, 혹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줄 도구로 나뉘는데요. 언제나 기술의 선두에 서 온 게임 업계 역시 고민이 깊습니다. 이 가운데 AI를 대하는 렐루 게임즈의 관점은 꽤 묵직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이들은 오직 '재미'를 위해, AI를 사용합니다. 사람을 대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초점을 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신 실장은 "AI를 게임 개발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이유는 대부분 개발 효율 측면"이라며 "게임의 재미에 딥러닝을 접목하려 노력하는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개발자들이 한땀 한땀 시나리오와 설정, 대사 등을 만들었다면, 거기서 일부를 딥러닝으로 대체했을 때 여태까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형태의 게임 플레이나 장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희가 최대한 빨리 그걸 증명해야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김 대표도 "인터넷이 나왔을 때처럼 변화 자체는 어쩔 수 없다"며 "그 뒤에 뭔가 새로운 것이 또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승용 렐루게임즈 개발실장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크래프톤)
 
작은 조직의 창의력을 성과로 이끄는 원동력은 남다른 추진력입니다. 오픈AI가 GPT-4o를 발표하고 렐루게임즈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에 이 기술 탑재를 정하기까지 이틀이 걸렸습니다. 신 실장은 "비결이라면 실제로 그 일을 할 사람들이 책임지고 뚫고 나가고, 나중에 그걸 공유하는 형태의 게임 개발 문화"라고 설명했습니다.
 
렐루게임즈는 크래프톤의 AI 실험실에 머물지 않고, 탄탄한 IP를 갖춰 지속 가능한 회사로 거듭나려 합니다. 이를 위해 AI를 활용한 재미를 차기작에도 적극 도입할 예정입니다.
 
김 대표는 "스모킹 건 계열로 LLM(대규모 언어 모델)을 활용한 아이디어로 연구·개발하는 게 하나 있다"며 "영혼이 있는 '넥스트 방치형'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장기적으로는 딥러닝이 게임의 경험이나 플레이 자체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개발도 계속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렐루게임즈는 데스크톱 PC로만 할 수 있는 루루핑의 모바일 판 개발 계획도 밝혔는데요. 김 대표는 "모든 기계(스마트폰)에 마이크가 달려 있지만, '(주문을 크게 외쳐야 하는데)모바일 판을 밖에서 할 수 있겠어?' 라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웃었습니다. 이어 "모바일에 PC판 구성을 그대로 옮기는 건 맞지 않아서, 어떤 식으로 틀어야 좀 더 모바일에 맞는 경험이 될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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