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퇴진해야 한다. 첫째, 일제 부역 전력자인 안익태·백선엽을 두둔했다. 안익태가 파시즘 선전 무대를 지휘한 것, 백선엽이 제국의 군인이었던 것은 ‘반민족’ 차원을 뛰어넘어 인류 공영에 반한다. 둘째, 전문성이 떨어지고 아직도 ‘공부 중’, ‘정립 중’이다. 과거 “1945년이 아닌 1948년이 광복”이라 말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언론 인터뷰에서는 꼬리를 내렸고, 최근 국회에서는 코멘트를 거부했다. 한국 사회가 왜 한 사람의 지적 방황을 떠안아야 하나. 셋째, 행정가로서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취임하자마자 이룬 일이 광복절 경축식 취소다.
그런데 근래 역사 논쟁은 김 관장 퇴진 문제를 넘어 소모적인 ‘건국 시점 논란’으로 치달았다. 1948년 건국론이 3.1운동, 임시정부, 광복절을 폄훼하고 이승만 찬양으로 나아간다면 반민주적 사관이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이 정식 수립된 시점을 강조하는 수준의 1948년 건국론도 있다. 1948년 건국론에 무조건 ‘뉴라이트’라 낙인 찍는 것은, 1948년 건국론이 아니면 ‘대한민국 부정 좌익 사관’으로 몰던 뉴라이트와 다를 바 없다.
1919년론이 좌익이고 1948년론이 뉴라이트라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좌익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뉴라이트인가? 이승만은 일왕에게 보낸 서한에서 “1919년 4월 23일 한국이 완전하게 조직된 자주통치국가가 됐음”을 밝혔다. 정식 정부 수립 과정에서도 1919년 건국론을 폈다. 한편 김대중 정부는 1998년 건국 50주년 사업을 전개했고, 김대중은 자서전에 “(1948년) 8월 15일 마침내 대한민국이 탄생했다”고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200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8월 15일을 두고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나라를 건설”이라 표현했다. 자타칭 뉴라이트가 김대중·노무현을 계승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광복회는 이승만을 계승하고 있다. 뒤죽박죽된 계보를 변명하지도 않는다.
1919년 건국론은 일제의 불법 식민 지배가 자행되는 와중에 정통성이 한국인에게 있었음을 명토 박는 성격이 있어서 설득력과 호소력이 있다. 제헌 헌법 전문도 유력한 근거다.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 다만 1919년론의 허점도 무시할 수 없다. 임시정부는 국민적 동의(민주 선거)를 거치지 않았고 당대에는 여러 독립운동 세력 중 하나였다. 자연히 해방 이전 한국인들은 건국이 되었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해방 전후의 ‘건국동맹’, ‘건국준비위원회’ 같은 조직도 그 근거지만, 임시정부조차도 1919년이 건국 시점이라 보지 않았다.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 강령(1941)에 따르면 ‘건국 제1기’의 기준은 ‘적의 일체 통치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 ‘중앙정부와 중앙의회의 정식활동’ 등이다.
임시정부 강령은 건국의 공을 1948년으로 미뤘고 제헌 헌법은 1919년 건국론을 폈다. 재미난 역사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을 이렇게 정리한다: ‘일제가 쳐들어와 조선을 무너뜨렸지만 그 집터의 주인은 한반도 인민이었고, 대한민국이라는 집은 1919년 착공되어 1948년에 준공되었다.’ 준공식에서 공식 지정된 유일 주춧돌은 임시정부지만, 착공 당시 있었던 여러 주춧돌(독립 및 건국운동)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착공이나 준공 못지않은, 4.19와 6월항쟁 같은 리모델링의 역사도 있다. 특정 시점 하나에 최고의 의미를 부여하는 시도는 몰역사적이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