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국가보훈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산하기관이 운영하는 88골프장(88컨트리클럽)매각 대금과 골프장 이용료 수익을 '중복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008년 수립된 88골프장 매각은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인데요. 골프장을 매각한다면서 정작 매각을 위한 구체적 계획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심지어 보훈부는 지난해 매각을 철회하기 위한 연구보고서까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철회에도 '72억' 증액…총 매각대금 '1320억'
30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5년도 보훈부 예산안 중 보훈기금 수입계획안에는 '기타재산 이자외 수입'으로 88골프장 매각대금 1320억원이 편성됐습니다. 전년 대비 72억4700만원 증액된 금액입니다.
보훈부는 지난 2022년 계획안을 편성하면서 88골프장 매각대금을 2727억원으로 추산하고, 3개년(2022년~2024년)에 걸쳐 매각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요. 연도별로 2022년 1320억원, 2023년 1180억원, 2024년 1227억원을 편성했습니다.
88골프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8년 10월 '3차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따라 매각이 결정됐습니다. 매각심사위원회 구성 및 주관사 선정 후 2011년까지 총 4차례 입찰공고가 진행됐으나 모두 유찰되면서 매각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보훈부는 2009년 국회에 제출된 2010년 회계연도 기금운용계획안부터 매년 보훈기금 수입예산안에 88골프장 매각대금을 계상 중인데요. 지난달 국회에 제출된 2025 회계연도 보훈기금 기금운용계획안에도 내년에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난달까지도 88골프장 매각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시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문제는 골프장 이용료 수입도 세입으로 계상한 점인데요. 내년 골프장 이용 수입 246억1000만원이 편성돼 있습니다. 매각 대금과 매각 시 발생하지 않을 골프장 이용료 수익을 이중으로 잡아놓은 겁니다. '기금 부풀리기'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안 팔린다"는 보훈부…그사이 '기금 부풀리기'
그동안 보훈부는 표면적으로 '안 팔린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하지만 수차례 매각 불발과 골프장 이용료를 수익으로 계상한 측면으로 미뤄보면, 속내는 팔기 싫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오기형 민주당 의원이 "2023회계연도 보훈기금 기금운용계획 중 88골프장 매각대금 실현을 위해 보훈부가 무슨 노력을 했는지 일자별 활동내역을 제출하라"는 지난 7월 서면질의에 대해 보훈부 복지서비스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골프장 운영과 매각 시 국가 예산의 비용편익을 비교 시행했다"고 답했습니다.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88CC 보훈 상징성 강화를 위한 발전방안 연구(2023.6)' 보고서에 따르면 매각하지 않을 경우와 매각할 경우의 자산가치를 2022년 미 매각 시 3394억원, 매각 시 45억원에서 20년 후 미 매각 시 3864억원, 매각 시 -3880억원으로 추산했습니다.
보고서는 "88CC는 개장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85억원의 당기수익을 창출해 매년 보훈기금 마련에 기여했으며 누적금액은 2975억원에 이른다"며 "88년 개장 이후부터 2042년까지 54년간 수익은 1조원, 매각순간부터 기획재정부는 캐시 카우를 잃게 된다"고 진단했습니다. 해당 자료는 "기재부가 매각 의사를 철회하도록 할 근거"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가 산출한 방식에는 자산가치가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며 "자산가치 재평가 등을 통해 자산가치 대비 순수익으로 계산할 경우 고금리 시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절대 수익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국가유공자의 재활 체육 기회 상실을 이유로 제시했는데요. 미국 등 보훈 선진국에서는 부상 당한 국가유공자의 재활을 돕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88CC를 민간에 매각한다면 보훈재활체육정책을 축소 또는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전국에서 유일한 국가유공자를 위한 골프장으로 매각 시 유공자들이 불만을 갖게 되고, 국가유공자 자녀의 골프 선수 육성 기회 상실 가능성 등도 언급했습니다.
지난 2016년 기준 국가유공자의 골프장 이용률은 1.3%에 불과했습니다. 고령화로 유공자 수가 줄어드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유공자의 이용률은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지난 2018년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분석한 결과 88관광개발에 11년간 13명의 보훈처 간부가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골프장 운영사인 88관광개발은 보훈부가 지분을 갖고 있어 보훈부 퇴직자들을 위한 낙하산 자리로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국회는 기껏 예산 승인을 해줬는데 매각하겠다는 보훈부는 시늉도 안 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오기형 의원은 지난달 4일 23년 결산심사에 따른 시정요구로 '징계'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입니다.
시정요구에는 "보훈부는 2023년 회계연도 동안 88골프장 매각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연구보고서를 통해 매각 자체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하는 등 정부 기금운용계획안 제출 및 국회 심의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일방적으로 원점·재검토해 행정낭비를 초래했다"며 "2010년 회계연도 이래 기금운용계획이 이행되지 않은 데는 보훈부의 이 같은 일방적인 기금운용계획 미집행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국회의 시정요구는 변상·징계·시정·주의·제도개선 등 5가지로 구분되는데요. 징계 의결 여부는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결정될 전망입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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