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괴델과 미국 헌법의 허점
2024-11-21 06:00:00 2024-11-21 06:00:00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문장은 참이라면 말 그대로 거짓이 되고, 거짓이라고 하면 참이 되는 모순을 일으킨다. 문장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구조에서 논리적 혼란이 기원한다. 단순한 말장난 같지만, 이런 문장은 깊은 논리학적 어려움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수리논리학자 쿠르트 괴델은 이러한 종류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절묘하게 활용하여, 수학에 증명할 수 없지만 참이 되는 명제가 있음을 밝히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47년, 미국 시민권을 신청한 괴델은 과도하게 진지한 자세로 면접을 준비한다. 그의 논리적 철저함은 미국 헌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발휘되어, 그는 헌법에 허점이 있으며, 이를 통해 합법적인 절차로 미국이 독재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인슈타인과 게임이론의 창시자인 모르겐슈테른은 심사가 형식적 절차임을 강조하며, 동료였던 괴델이 면접에서 이 이야기를 언급해 심사를 망치지 않도록 애를 썼다고 전해진다. 면접에서 괴델은 헌법의 문제를 논할 뻔했지만, 담당 판사가 다행히도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 무사히 시민권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괴델이 발견했다는 미국 헌법의 문제는 기록으로 남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해왔다. 법학자 게라-푸욜은 한 논문에서 괴델이 발견한 문제를 그의 학문적 관심사와 연결시켜 추정하며, 미국 헌법 제5조에 주목한 바 있다. 이 조항은 헌법의 개정 절차를 규정하며, 개정에 필요한 조건을 다루는데, 이 조항을 적용해 제5조 자체도 개정할 수 있다는 점에 논리적 허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제5조를 통해 개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이어서 다른 조항들을 수정한다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의 자기 참조적 성격이, 괴델이 관심을 가졌을 법한 헌법의 허점이라는 주장이다.
 
괴델이 경험한 역사적 현실은 이러한 주장과 어울린다. 그의 미국 이주는 나치 독일의 부상을 배경으로 한다. 괴델은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직후인 1939년에 비엔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이었음을 괴델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치당은 선거를 통해 다수당이 되었고, 히틀러는 정치적 협상과 절차를 거쳐 총리가 되었다. 나치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필요한 법을 만들고, 점차 의회를 무력화하며 독재 정권을 수립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괴델로 하여금 헌법의 결함에 주목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헌법을 살펴보면 논리적 허점처럼 보이는 부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헌법은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나온다고 선언하지만, 이 국민이 누구인지는 하위법이 규정한다. 그러니 국민의 범위는 권력에 의해 임의로 조정될 여지가 있다. 현재의 국적법은 '출생 당시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민인 자'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지만, 이 조항이 '모'에 대한 조건을 포함하는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불과 1997년의 일이다.
 
헌법 속의 논리적 퍼즐들은 흥미롭지만, 민주주의의 기초에 불안을 느끼며 여기에 집착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지도 모른다. 헌법의 작동은 결국 고정된 문자 이상의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헌법의 진정한 힘이란 그 논리의 완벽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와 원칙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신념, 그리고 실행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 아닐까? 혼란한 시대에 민주주의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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