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LX하우시스와 거래해온 현글라스는 전체 생산 물량 중 LX하우시스에 납품하는 비중이 약 90%에 달해 피해가 더 컸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유리 원자잿값은 급등했습니다. LX하우시스가 이런 원자잿값을 반영해주지 않자 공사를 하면 할수록 현글라스의 손해는 커졌습니다. LX글라스 측에 단가 인상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현수 대표는 결국 사비 약 28억원을 털어 손해를 메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손해가 쌓이면서 원자재를 구매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LX하우시스는 '선급금'이라는 카드를 들고 왔습니다. 시작도 안한 공사 현장의 공사비를 선생산한 것처럼 재고를 잡고 선급금 형식으로 현글라스 측에 지급한 것입니다. 당장 공사 현장이 멈추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일종의 공사 대금 돌려막기인 셈입니다. 나중에는 이를 대여금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하며 적자가 쌓이자 현글라스는 올해 2월 전기료도 내지 못한 채 공장 문을 닫았습니다.
대진글라스 공장에 설치된 LX하우시스 광고판. (사진=대진글라스)
광고판 무상 이용하고도 전기요금은 '나 몰라라'
하도급업체를 향한 LX하우시스의 요구는 기이하고도 다양했습니다. 대진글라스의 경우 3억원을 들여 설치한 옥외광고판을 LX하우시스 측으로부터 '무상 이용'을 요구받았습니다. 대진글라스는 2008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에 위치한 공장을 신축하면서 가로 10m, 세로 20m 크기의 지상 옥외광고판 철제 구조물을 설치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해 광고 효과가 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LX하우시스 측이 자신들의 옥탑 사인물을 설치하고 싶다고 요구해왔습니다. LX하우시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대진글라스는 2009년부터 LX하우시스 광고판을 게재하게 됐습니다.
LX하우시스는 광고비를 전혀 지급하지 않고 15년 넘게 무상으로 대진글라스의 옥외광고판을 이용했습니다. 광고에는 대진글라스 상호도 하단에 작게 병기됐지만 2017년부터 LX하우시스 측의 요구로 대진글라스 상호를 빼야 했습니다. 게다가 야간에도 광고 효과를 내기 위해 2009년부터 2017년 6월까지 대진글라스 측이 야간 조명을 운영했지만 한달에 약 150만원에 달하는 전기료를 LX하우시스는 한 번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김백두 대표는 "LX하우시스와 거래하다가 부도난 업체들이 많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 업계에서 이번 공정위 결과를 다 지켜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LX하우시스 의존도가 높았던 현글라스는 LX하우시스 측의 당일 납기 요구에 맞추기 위해 공장에 히팅룸을 설치했습니다. 겨울에 유리를 건조하려면 5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히팅룸을 만들면 당일 건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히팅룸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공장도 증축해야 했기에 현글라스는 공장 증축 비용과 히팅룸 설치 비용으로 2억원가량 투자했습니다. 히팅룸 설치로 인한 단가 조정은 어렵지만 LX하우시스가 전체 공장의 전기료의 절반을 부담하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설치 후 그들은 말을 바꿨습니다. LX하우시스 측은 단 한 번도 전기세를 부담하지 않았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LX하우시스는 10여년 전에 유리 제조 기계를 구매해 현글라스 공장에 설치한 바 있습니다. 10여년이 지나 기계가 노후화됨에 따라 현글라스 측에 기계를 업그레이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현글라스가 이 금액을 먼저 지불하면 추후 정산해주기로 했습니다. 이에 김현수 대표는 3억9000만원을 들여 해당 기계를 업그레이드했지만 이번에도 비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김현수 대표는 "기계가 10년이 지나면 성능이 완전히 떨어진다. 새 기계와 비슷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업그레이드를 실시했다"며 "티코를 그랜저로 바꿔놓은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업그레이드 후 얘기는 달라졌다"며 "사용자가 소모품을 교체하기로 돼 있으니 업그레이드 비용을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했습니다. 해당 기계의 소모품 교체 비용은 연간 6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4일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민주당 의원(왼쪽 사진)이 노진서 LX하우시스 대표(오른쪽 사진 왼쪽)와 김현수 현글라스 대표(오른쪽)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국회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캡처)
국감서 '뭇매' 맞고도 협력업체와 합의 시도 없어
LX하우시스 하청업체들은 오래된 갑질로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LX하우시스에 배상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LX하우시스의 △서면 계약서 미발급 △납품 단가 미조정 △편법 선급금 지급 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하청업체 서면 계약서 미발급으로 인한 하도급법 위반에 대해 묻는 질의에 노진서 LX하우시스 대표는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하도급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몇몇 사안에 대해서 누락된 부분은 있다"고 했습니다.
지적을 받은 이후에도 LX하우시스 측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청업체와의 대화, 합의 등의 시도가 전혀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LX하우시스는 국감에서 지적받은 내용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무위 관계자는 "LX하우시스는 상황을 부인하고 있고 피해 기업들 대상 보상안이나 합의에 대한 일말의 여지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정위 결과가 발표 나더라도 행정소송 등을 진행해 시간을 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두 업체 합쳐 400억원이 넘는 피해액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진글라스는 옥외 광고비, 원자잿값 상승분, 시공비, 물류비, 금융비, 전기료 등을 포함한 280억원을, 현글라스는 이에 더해 기계 업그레이드 비용을 포함한 137억원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금액을 해당 업체에 보상하는 것보다 공정위의 처분을 받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회사가 이들 업체와 대화나 합의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이번 건과 별개로 원론적으로 보면 당사자끼리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원청 입장에서 계약상 배상 등의 의무가 없다고 봤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원청이 대형 로펌과 함께 공정위 조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과징금이 적게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작은 업체들과의 계약의 경우 계약금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과징금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하청업체는 결국 공정위에 LX하우시스를 신고했고 현재 공정위에서 해당 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 LX하우시스와 LX글라스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달 들어서는 경과보고도 진행했습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진행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밝힐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LX하우시스 측은 공정위 조사 건이기 때문에 현글라스, 대진글라스 관련 입장 표명이 어렵다고 전해왔습니다. LX하우시스 측은 "현재 공정위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고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에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입장 표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국감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국감에서 증인에게 여러 지적을 했고 위증에 대한 경고를 하기도 했다. 국감 이후 최소한의 개선이나 반성의 기미가 보여야 하는데 아직도 가시적인 것이 없어 아쉽다"며 "공정위 조사를 통해 실상이 제대로 드러나서 앞으로의 하도급 관계에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