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공교통 '서비스 유연성'이 한국 관광의 미래다
2025-12-09 06:00:00 2025-12-09 06:00:00
겨울의 문턱, 서울에 첫눈이 내리는 풍경은 언제나 포근함과 한 해를 정리하는 아련한 감성을 선사합니다. 하얀 눈이 쏟아지는 도심은 잠시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줍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눈이 잦아들고 기온이 급강하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은 이내 따뜻한 낭만 대신 시스템의 차가운 민낯을 드러내기 일쑤입니다. 
 
밤 9시까지 이어진 폭설은 도심 전체를 날카로운 빙판길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각, 인천국제공항에서 K-컬처에 대한 설렘을 가득 안고 도착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서울 여행의 시작점에서부터 깊은 당혹감과 혼란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밤 12시가 가까워지자 규정대로 모든 버스와 기차 운행이 종료되었고, 빙판길의 위험 앞에선 택시들마저 운행을 일제히 멈추었습니다. 도심이 고립돼 버린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서울역이었습니다. 서울의 첫 관문이자 비상시엔 대피처가 되어야 할 곳이 바로 서울역입니다.  그런데 서울역을 관리하는 이들은 '보안 규정'이라는 차가운 잣대만을 들이밀면서 마지막 손님이 도착하자마자 대합실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시민과 관광객들을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 도로변으로 내몰았던 겁니다. 서울역에서 쫓겨나 사면초가에 놓인 이들은 필사적으로 택시를 호출했지만, 프리미엄 택시조차 잡히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첫인상은 '환대(歡待)'가 아닌 '시스템의 외면'으로 뼛속 깊이 각인되었을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단 한 번의 불편함이 한국에 대한 모든 긍정적 기대를 산산조각 낼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서울역의 그 겨울밤이 증명했습니다. 
 
서울·인천·경기·강원 등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4일 오후 서울 중구 거리의 모습. (사진=뉴시스)
 
재방문율을 가로막는 '규정의 경직성'
 
K-콘텐츠의 폭발적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율은 일본과 대만 등 주변 경쟁국에 비해 여전히 아쉬운 수준입니다. 관광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대형 이벤트나 화려한 명소만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보여주는 세심한 배려, 즉 작은 곳에서 경험하는 '따뜻한 친절'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재방문 유인책입니다.
 
특히 이번 서울역 사태는 일기예보를 통해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비상 상황'에서, 우리의 공공 서비스 시스템이 정해진 종료 시간에 갇혀 시민과 관광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하지 못했음을 드러낸 일입니다. 한국의 국격이 시험대에 오른 순간, 국가 이미지를 세계에 전파하는 교두보인 서울역의 무방비한 폐쇄는 가장 큰 실책이자, 시스템이 인간을 외면한 비극이었습니다.
 
유연한 서비스 연계, 마음을 녹이는 선진국 시스템
 
이제 우리는 비상 상황을 '규정에 의한 정지'가 아닌 '사랑에 의한 연장'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공공 서비스 기관장들은 일기예보상의 폭설, 폭우 등 예측 가능한 특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인간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자율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계된 서비스 연장을 결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폭설 예보가 내려지면 서울역은 단순한 '교통 종착역'이 아닌 '임시 대피소'의 역할을 겸하도록 대합실 운영 시간을 새벽까지 연장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공항철도 및 광역 대중교통의 막차 운행 시간을 최소 한두 시간 연장하는 '서프라이즈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1월2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차 탑승객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와 같은 유연한 결정은 재난 수준의 추위 속에서 따뜻한 대합실이라는 피난처를 제공하고, 막차 걱정 없이 여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외국인 관광객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공공 서비스'이며, 그들이 한국을 다시 찾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될 것입니다.
 
과거 우리 공공교통 서비스가 추석이나 설 명절에 귀성객을 위해 도로 상황에 맞춰 운행 시간을 유연하게 연장했던 '환대의 이벤트'를 기억합니다. 그 유연함의 정신을 이제는 예측 가능한 재난 상황에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 시스템의 경직성을 벗어던지고 인간적인 배려와 유연한 서비스 연계를 통해, 한국 관광의 미래를 열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기관장들의 서비스 혁신을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신승동 전 강북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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