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살에 베이징 달려가는 '캐·영·독'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중국은 '다자주의 수호' 강조 전략
2026-01-23 06:00:00 2026-01-23 06:00:00
이 정도 좌충우돌(左衝右突),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또 있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북극 지역 전체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framework)을 만들었다"면서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2월1일에 발효할 예정이었던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이에 앞서 한 스위스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는 그린란드를 미국이 가져야 한다고 고집하면서도 이를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2026년부터 그린란드는 미국 영토'라고 적힌 팻말 옆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성조기를 든 이미지. (사진=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
 
트럼프는 지난 17일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는 자신에 맞서 그린란드 주요 시설 방어를 위한 '북극의 인내' 합동 군사훈련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2월1일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고, 그런데도 이들이 물러서지 않으면 6월1일부터는 25%로 인상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틀 뒤인 19일에도 덴마크 등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100% 실행할 것"이라고 호언했고, 그린란드 확보를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노 코멘트"라고 말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는 노골적이고, 저열하게 유럽을 조롱하기도 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유럽은 약하고 미국은 강하다"며 "유럽의 지도자들은 결국 미국의 안전보장 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 모든 것이 붕괴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는 그린란드에 대형 성조기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가상 이미지와 캐나다, 베네수엘라를 미국령으로 표시한 가상의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유럽연합(EU)은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7개 회원국 전체가 참여한 긴급회의에서 930억유로(약 159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 패키지 발동에 대해 논의했고, EU를 위협하는 국가에 대한 무역을 제한하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도 거론했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위 미국과 2위 EU사이에 사상 초유의 무역전쟁이 벌어질 판이었다.
 
대응도 강화했다. 8개국이 참여한 '북극의 인내' 작전과 함께 덴마크는 그린란드에 병력을 증파하는 한편, 나토에 유럽은 군사적 '그린란드 상시 주둔'을 요청했다. 나토는 '아크틱 센트리(Arctic Sentry)' 작전도 구상하고 있다. 트럼프가 중국, 러시아에 비해 안보 취약 지역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의 공중·해상 순찰을 나토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캐나다-중국 정상회담. (사진=연합뉴스)

'그린란드 소유' 고수하면서도일단은 '관세 철회'
 
트럼프-뤼터 합의안이 공개돼봐야 정확한 상황을 알겠지만, 유럽을 뒤흔드는 데 성공한 트럼프는 관세 철회 등으로 일단은 주춤한 모양새다. 여기에는 유럽의 거센 반발과 함께 중국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토의 핵심 국가이자 미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는 지난 16일 베이징을 전격 방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재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캐나다 총리의 중국 방문은 2017년 이후 9년 만인데, 그 사이 양국 관계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2018년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하자 중국이 그 보복으로 캐나다인을 구금하는 '화웨이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이후 중국의 캐나다 선거 개입 의혹, 상호 외교관 추방, 전기차 고율 관세 부과와 농산물 보복 조치가 이어졌다. 카니 총리는 시 주석에 이어 권력 서열 2위 리창 총리, 3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도 회담했다.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는 트럼프의 영토 압박과 지속적인 관세 위협이 캐나다를 중국에 향하도록 만든 것이다. 캐나다는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100%에서 6.1%로 대폭 낮췄고, 중국도 캐나다산 유채씨 관세를 84%에서 15%로 크게 낮췄다. 
 
캐나다뿐이 아니다. 대서양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인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달 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영국 총리의 방중은 2018년 테리사 메이 전 총리 이후 8년 만인데, 이번 방중은 런던 주재 초대형 중국 대사관 신축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영국 정부는 런던 옛 왕립조폐국(로열 민트 코트) 2만㎡ (약 6050평) 부지에 주영국 중국 대사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승인했는데, 유럽에서는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중국은 타워브리지 맞은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이 부지를 2018년에 매입했으나, 이 초대형 대사관이 중국의 첩보 활동 요새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영국 정부가 그동안 승인을 미뤄오다가 이번에 승인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다음달 24~27일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독일산 자동차에도 관세 부과를 시사한 상황에서, 독일 자동차의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를 회복하지 못하면 경제를 반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의 유럽 방위에서 핵심인 독일에는 미군 3만5900명이 주둔하고 있다.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캐나다 총리, 시진핑과 회담 후 "중국과의 관계가 미국과의 관계보다 예측 가능"
 
중국은 당연히 현재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달 초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UN) 산하 31개, 비유엔 35개 등 총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를 선언하자,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라며, 미국과 비교해 "중국은 다자주의를 수호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는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 체제를 유지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핵심으로 하는 다자간 무역 체제를 지원한다"는 시 주석의 전략 기조에 기반한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하게 될 것을 누가 예상했을까?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이 이에 맞서 자신을 변호하던 논리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카니 캐나다 총리는 시 주석과의 회담 후 "중국과의 관계가 미국과의 관계보다 예측 가능하다"며 "솔직하고 일관된 대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이런 세상이 된 것이다. 캐나다는 미국과 세계에서 가장 긴 국제 육상 국경(8891km)을 맞대고 있고, 전체 수출의 75%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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