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내년 나라살림 규모가 올해보다 17조원, 5.5%늘어난 326조1000억원으로 확정·발표됐다. 정부는 '일자리 예산'으로 자평하며 '재정건전성 확보와 복지 증진'에 초점을 맞춘 예산안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나브로 다가온다며 시장은 공포에 질려있는데,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은 야당의 논평처럼 '태평성대' 예산이다.
더욱 불안한 까닭은 3년 전 레코드 판을 그대로 틀어놓은 것 같은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다.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칠 때에도 정부는 "괜찮다"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다음해 예산안을 편성했다.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2009년)도 예산안은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충에 초점을 맞췄다"며 2009년 예산안을 확정·발표했다. 그해 정부는 추경예산을 편성할 수 밖에 없었다.
현실과 괴리된 예산안은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치닫고 당시 추경예산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 큰 원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내년 예산안에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4.5%로 전망했다. IMF 등 국제기구와 국내 민간연구소 전망치 3.6~4.4%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성장률이 예상보다 1%포인트 낮아지면 세수가 2조원 부족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정부의 세입 목표는 레토릭에 불과하다.
물론 내년 예산안에 위기로 인한 돌발변수를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 조차 "예산안은 보수적으로 잡아야 하는데, 복지요구에 밀려 복지예산을 늘리고 재정건전성을 2013년까지 확보하겠다는 목표에 집착했다"고 지적하는 형편이다.
더구나 정부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인천공항공사 지분을 매각해 세외 수입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태에 수익과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내년 예산안에서 세외수입은 16%넘게 늘어난다. 안팔릴지도 모르는 정부 자산을 세외수입으로 확보해 세수를 충분히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한마디로 '긴장감'도 '대응력'도 없는 "예산안"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7일 한 방송사에 출연해 "나중에 위기가 실제 도래하면 성장률 등을 재측정해 예산안을 검토해야 될 것 같다"고 발언했다. 예산안을 확정·발표한 당일 "예산안 책정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 셈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민경제대책회의가 지난 26일 비상경제대책회의로 바뀐 데 이어 정부 경제부처들이 매주 모여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가 28일 10개월만에 위기관리 대책회의로 전환됐다.
올해 상반기 내내 물가잡겠다고 회의만 하더니, 이제는 위기상황이라며 회의 명칭만 거창하게 바꾸고 있는 모양새다. 회의 이름을 바꾸기 전에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경제 위기 상황에 맞는 예산안 편성을 다시 고려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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