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주식워런트증권(ELW) 관련 첫 소송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28일 법원은 스캘퍼(초단타매매자)들이 대신증권으로부터 제공받은 속도 관련 서비스를 활용해 ELW 거래를 한 행위, 또 위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모두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한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검찰이 주장하는 '주문처리 과정에서 속도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 금융 감독 기관 조차도 명확하게 선언하거나 그 실현가능한 방법과 기준을 제시한 바 없다며 증권회사 및 스캘퍼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오는 8일 구형을 남겨둔 스캘퍼 박모씨 등에 대한 사건에서도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는 형사처벌의 영역과 정책적·행정적 규제 영역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들의 막대한 손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캘퍼 등에 대한 규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ELW 시장 내부 구조적인 요인의 개선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결 취지다.
◇ELW 시장에 대한 오해와 진실.."스캘퍼 탓 아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크게 세가지였다.
스캘퍼(초단타매매자)가 증권사로부터 제공받은 DMA(증권 자동전달시스템, 직접 전용주문)가 '부정한 수단'에 해당하는지, 주문접수 순서대로 처리하는 '시간 우선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피고인들이 DMA 시스템에 대한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다.
ELW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는 이유는 스캘퍼 때문이 아니라 ELW 시장의 구조적인 요인에 의한 결과라는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즉 시간가치의 손실, LP(유동성공급자)의 호가 스프레드로 인한 손실, ELW 거래 수수료 비용, 개인투자자들의 투기적인 매매행태가 가미돼 손실이 증폭된 결과라는 것.
재판부는 "ELW는 동일한 내용의 옵션 상품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최초에 판매되고, 그 후로는 감소로 인해 내가격의 ELW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은 모두 만기가 가까워질수록 0원에 수렴하게 되는 '초고위험성 상품'이다. 높은 가격 때문에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3.3%)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소액 투자로 큰 이익을 노리는 개인투자자들(94.5%)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단기간 내에 기초자산의 가격이 개인투자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변동해 행사가격에 진입'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손실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법원은 극미 미미한 경우(0.006%~0.008%)를 제외하면 스캘퍼의 주문과 개인투자자의 주문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ELW 시장은 LP가 호가 물량을 계속 공급하므로 스캘퍼의 매매에 의해 개인투자자들의 거래기회가 박탁되지 않는다"면서 "코스콤으로부터 증권사 및 개인투자자들에게 'ELW 호가 잔량 정보가 전송되는 과정에서 그 전송이 1.3~1.4초 지연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시현상 때문에 일반투자자들이 스캘퍼로 인해 거래기회를 박탈당한다고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증권사는 거래량을 능려 개인투자자들을 유인할 목적으로 스캘퍼들에게 특별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검찰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증권사로부터 속도 관련 서비스를 제공받은 스캘퍼는 당해 증권사가 LP로 활동하고 있는 ELW 종목을 거의 거래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신증권 스캘퍼들이 거래 중 대신증권이 LP로 발행한 ELW 거래 비중은 거래 대금 기준 0.14%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법원은 '알고리즘 매매 프로그램의 증권사 내부 서버 탑재, VIP 전용선 제공, VIP 별도 DB 구축, 원시세정보 제공, 대폭 축소한 가원장 체크' 등을 통한 빠른 주문 처리 속도가 부정한 수단에 해당하는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DMA 서비스 및 알고리즘 매매 서비스에 대해 현재까지 법률에서 이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거나 금융 당국 기관에서 위 서비스 자체를 제공하지 않도록 규정한 적이 없다"며 증권사들은 ELW 서버 이외에도 기관투자자 등 다른 고객들을 위한 DMA 서버, FLX 자동매매서버 등 전용서버를 제공하는 한편 그 서버에 고객들의 알고리즘을 직접 탑재해 왔다"고 설명했다.
노정남 대신증권에 대한 선고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검찰이 항소할 뜻을 밝혀 사건이 최종 마무리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히거나 만약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5년간 업계에 재취업이 금지된다.
이날 노 사장에 대한 선고결과는 함께 기소된 11개 증권사의 판결 결과를 미리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앞서 검찰은 노 사장에게 징역 2년6월을, 같은 회사 김병철 전무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검찰 막판까지 진땀..'무죄' 스스로 자초
검찰은 구형 이후에도 재판부에 추가 공판기일과 현장검증을 신청하는 등 선고공판을 앞두고 추가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재판 상황이 검찰에 불리하게 돌아가는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구형 후 추가자료를 제출하거나 현장검증까지 신청하는 일은 극히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갑작스런 현장검증신청에 대해 재판부는 바로 답하지 않고 "검토해보겠다"고만 답했다. 이날 선고기일이 예정대로 진행되면서 현장검증은 물거품이 됐다.
검찰은 스캘퍼 박모씨 등 2명에 대한 공판에서도 공소장을 일부 변경하고 결심이 예정된 8일 증거를 추가 제출한 뒤 구형할 방침이다.
앞서 검찰은 노 사장 등에게 구형한 뒤 열린 지난 17일 대신증권에 대한 추가공판에서도 "ELW 거래유형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으니 선고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재판부로부터 "거래 유형 분석은 수사 초기에 이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선고기일은 변경할 수 없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검찰이 선고를 불과 열흘 앞두고 추가 증인신문까지 요청하자 변호인도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은 "검찰이 증인신문하려고 하는 일반투자자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를 이미 변호인 측에서 동의했고 결심까지 진행된 상황이다. 그런데도 마치 새로운 증거인 것처럼, 굳이 기일을 더 열어 증인신문을 해야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이에 검찰은 "ELW 관련 재판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일반투자자의 증언이 법정에서 현출된 적 없다"며 "대신증권 재판부에서 일반투자자를 증인신문하면 다른 ELW 재판부에도 공통자료로 쓰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검찰이 믿었던 증인들이 초반전부터 진술을 애매모호하게 바꾸면서 검찰에게는 고난의 길이 예정되어 있었다.
◇"증권사별 ELW 시스템·거래방식 달라..예단 말라"
이번 대신증권에 대한 선고결과가 다른 재판부의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 증권사의 방화벽 시스템, 거래 체결을 주도한 스캘퍼의 거래 방식 등이 증권사 별로 사실관계에 약간의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증권 등 5개 증권사와 HMC투자증권 사건은 당초 하나로 병합됐다가 다시 분리되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당초 검찰은 증권사가 스캘퍼들에게 제공한 전용선을 6개 증권사들에 공통되는 '부정한 수단'으로 보고 HMC투자자증권을 비롯한 6개 증권사 대표와 IT담당자, 스캘퍼 등을 한꺼번에 기소했다.
그러나 삼성증권 · 대우증권 · 유진투자증권 · LIG투자증권 · 한맥증권과 거래했던 박씨의 거래 기법이, 다른 스캘퍼가 HMC투자자증권과 거래한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사건 분리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공소장변경을 거쳐 당초 다른 증권사들과 병합심리돼 왔던 HMC투자증권 사건만을 따로 분리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다른 증권사의 재판을 심리하는 재판장이 직접 '대신증권 판결 결과와 달리 독립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검찰과 변호인의 예단을 우려하기까지 했다.
형사25부의 한창훈 재판장은 "대신증권 선고결과에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심리할 것"이라며 "사건별로 사실관계가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스캘퍼에게 일반회선보다 빠르게 주문을 체결할 수 있는 전용선을 제공하는 등 특혜를 준 혐의로 지난 6월 12개 증권사 전·현직 대표를 한꺼번에 기소했다.
◇'금융당국 책임론'도 솔솔
이날 재판부가 문제삼은 금융당국 측의 미비한 행정적 규정에서 보듯, 대신증권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났더라도 ELW 거래구조 방식 요인에 대한 파문은 금융당국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법률과 각종 규정을 둘러싼 논란의 단초를 애초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당국이 제공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더욱이 증권사들은 금융 당국의 승인 아래 전용선 등을 구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가 독단적으로 ELW 관련 업무를 추진한 것이 아니고 금융 당국의 승인 하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4월 검찰수사가 시작되고 난 이후인 5월19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ELW 추가 건전화방안'은 재판 내내 쟁점이 됐다.
이 자료에는 '증권사의 방화벽을 거치지 않는 전용선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검찰은 여기에 주요 근거를 두고 수사와 재판을 진행해왔다.
또 방안에는 "증권사의 방화벽을 거치지 않고 스캘퍼의 주문처리 시스템을 호가제출 단계(FEP) 등에 탑재해 주는 경우는 금지"한다는 내용도 검찰에게 유리한 항목이다.
아울러 'ELW 추가 건전화방안'에서는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합리적 범위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한다"는 점과 "투자자의 주문방법과 관련해 전용선을 제공하거나, 주문시스템 탑재 등 접수 위치상 편의 제공 등", "외국의 경우도 회원사 주문 통신장비 등에 투자자의 알고리즘 주문시스템을 탑재하는 것을 대부분 허용"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은 증권사측에게 유리한 항목이다.
금감원의 개선 방안이 ELW 거래에 대한 검찰과 증권사측 쌍방에 유리한 근거로 모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형 12개 증권사가 동시에 같은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데다가 지난 3일에는 이들 가운데 6개사의 대표들과 임원들이 피고인 신분으로 한날 한시에 같은 법정에 서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검찰이 자신감을 갖고 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도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증권거래소의 책임있는 담당자들의 진술때문이다.
즉 ELW 거래에 있어서 '속도'가 중요한 요인이고, 속도에 차이가 난다면 불공정한 거래라는 검찰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한 것도 이 기관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들이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이들은 모호한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검찰은 믿었던 증인들에게 뒷통수를 얻어맞는 상황이 되었고,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진땀을 흘린 것도 이들의 '사실상 진술번복' 때문이다.
이번 무죄 판결이 확정되면 증권사들은 위축됐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융위, 금감원, 증권거래소의 불분명하고 모호한 태도와 증권가의 현실과 법규범의 조화를 미처 담아내지 못한 부분은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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