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손지연기자] 무역 1조달러를 돌파했다.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 성장의 열매는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이뤄낸 성과라는 것도 분명하지만, 대기업들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많은 부분을 희생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성장정책을 추구한 것은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을 때는 낙수효과가 일리있었다. 수출기업의 성장은 투자를 늘렸고, 일자리를 늘리고, 소비를 늘리고, 세수를 늘렸다. 하지만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더 이상 낙수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낙수효과를 전제로 대기업과 수출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고수했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기형적인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고용과 투자, 소비, 세금 등 각 부문 별로 낙수효과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짚어보고, 바람직한 국민경제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수출공화국' 한국 경제에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지난 5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달러 클럽에 가입했지만, 수출·투자·소비라는 성장의 세 축 가운데 수출에만 치중해 투자와 내수는 부진한 외발 성장 구조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출 성장기여도는 1990~1996년 사이 3.5%포인트, 투자는 4.0%포인트, 소비는 4.2%포인트로 3개 성장축이 비교적 균형을 이루며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상황은 바뀌었다.
2005~2011년 동안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5.1%포인트로 확대된 반면, 투자와 소비의 기여도는 각각 1.0%포인트, 2.3%포인트로 축소됐다.
기업의 투자가 부족하다 보니 고용이 안되고, 소득이 없다보니 소비 역시 뒤쳐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2002년부터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까지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14.5%로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증가율이 각각 3.9%와 5.4%를 크게 상회한다. 2010년 이후에도 수출과 내수의 온도차는 여전해 성장축의 불균형이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과 2011년 1분기 수출 증가율은 각각 15.8%, 18.7%로 호조세를 보인 반면, 민간소비 증가율은 각각 4.1%, 2.8%에 그쳤다.
◇ '부자감세' 친기업정책..서민은 빚만 늘고, 고소득자는 해외명품 소비 확대
전문가들은 현정부가 낙수효과에 집착해 감세정책과 고환율 정책 등 대기업 중심의 수출중심 정책으로 일관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빚을 무리하게 내서 소비를 진작시키는 정책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이후 소비여력이 소진되면서 소비의 성장기여도가 뚝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해외소비 비중이 크고 국내소비는 양극화가 심해져 소비가 고용창출과 경기활성화에 양의 효과를 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외소비가 늘면서 낙수효과가 단절된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2년 만인 지난해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사용한 돈은 2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우리 국민이 해외에 나가서 쓴 돈은 20조3180억원. 전년대비 15.4% 증가한 수치로 집계를 시작한 1970년 이후 최대치다.
박상조 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장은 "부자감세를 해서 사람들이 지갑을 열어 소비를 하게 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부자감세로 지갑이 두꺼워진 사람들은 해외 명품 구매를 위해 소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자들의 두툼한 지갑이 내수를 위한 소비로 연결되지 않았다"며 "소비가 안되다 보니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영세 상인의 소득으로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현상은 급격히 늘어난 해외소비와 달리 미미한 증가세에 머문 국내 소비액에서 확인된다.
서민들은 빚내서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고가품의 소비가 성황을 이뤘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해외명품은 지난해 신장률은 전년대비 7%가량 늘어났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현재까지 롯데백화점 해외명품 부문은 지난해 대비 약 22.5%, 신세계백화점에서도 해외명품 부문이 34.9% 신장했다.
일반 신사·숙녀복 신장률과 백화점 전체 평균 신장률이 10%대인 것과 비교할 때 해외명품이나 고가의 아웃도어 부문은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대영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는 "한국은 소비의 상당 부분이 관광이나 어학연수, 유학 등을 위해 해외에서 소비가 커 실제 국내 소비는 지표상 소비보다 더 작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소비 위축..결국 자영업 타격→일자리 감소→소득감소→경기 위축
더 큰 문제는 소비 부족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소비는 개인 생활과 밀접한 지출로 투자나 수출에 비해 경기상황에 따른 변동이 작은 항목임에도 GDP 차지 비중이 낮아지면 외부환경 변화에 취약하게 되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민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3~54%다. ▲ 미국(70% 내외) ▲ 일본(59~60%) ▲ 독일(58~59%) ▲ 대만(60% 내외)가 비교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다.
아울러 소비감소는 음식점, 세탁소, 동네슈퍼 등 생활밀착형 자영업이 큰 타격을 받게 되고, 이들의 폐업이 곧 일자리 창출 저하로 연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억원당 취업유발인원을 나타내는 취업유발계수는 2009년 기준으로 소비가 17.1명으로 가장 크고, 투자가 13.1명, 수출이 9.4명이다.
게다가 내수마저도 일부 대기업들의 독주로 양극화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유통, 음식료, 섬유, 의복 등 내수업종에서 일부 중견기업들이 주도해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수출에서는 물론 내수에서도 모두 상위 5위권을 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5일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2004년 내수 상위 5개 기업은 ▲ 1위 포스코(13조8900억원) ▲ 2위 현대자동차(10조1800억원) ▲ 3위 삼성전자(10조360억원) ▲ 4위 SK(9조2900억원) ▲ 5위 LG전자(5조86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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