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헌철·류설아기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력으로 월드 클래스 반열에 합류한 국내 화장품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CBD) 제10차 총회에서 채택된 '나고야의정서'가 정식 발효되면 현재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고 있는 해외생물자원에 대해 추가 로열티를 지불하고 이용시에도 해당국의 사용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재료값 상승으로 화장품 제조 단계부터 투자금액이 늘어나는데다, 이를 판매가에 반영하면서 빚어지는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거부 반응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마케팅 비용 등 연쇄적으로 막대한 자본 소요가 불가피하다.
특히 원재료 목록과 로열티 금액 여부, 국내 업체의 개발권리 보장 등 나고야 의정서 발효에 따른 구체적 피해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원가 상승에 기업 소비자 부담 불가피
경기침체에도 세계 화장품 산업은 지난 2009년 전년대비 3.7% 증가한 2237억불 규모로 성장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의 2.3%를 차지, 12위대에 올라와 있다.
특히 전세계 화장품 시장 성장률보다 높은 4.6%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시아 시장에서도 일본(11.5%)과 중국(6.1%)에 이어 3위다.
지난 2009년 우리나라 화장품 생산액도 전년대비 9.5% 증가한 5조1686억원이며, 최근 5년간 연평균 8.8%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나고야 의정서 발효에 따라 화장품 원료로 해외생물자원이나 전통지식 등을 제공하는 국가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면서 원가 상승 부담을 안고 있다.
현재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는 약 8000여개로 추정, 한 가지 제품을 생산할 때에는 최소 20개에서 60개의 원료를 개발 및 배합해야 한다.
특히 원료의 안정성과 건강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높아지면서 식물에서 유래한 천연 및 유기농 화장품에는 그 영향이 더 클것으로 예상된다.
천연 및 유기농화장품 시장은 지난 2005년부터 최근 5년간 연평균 15%로 고성장했으며, 2010년 기준 약 230억불로 전체 시장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5년간 천연 유기농화장품 시장이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계는 천연 식물 효능이 있는 생약을 화장품에 직접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산삼·홍삼·감초·녹두·오가피·생강·녹차·영지버섯 등이다.
이처럼 국내외 화장품 업체들은 각 회사마다 제품에 주요한 각종 식물 추출물을 포함한 원료를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90년 1월 전세계 화장품 산업의 특허건수는 약 32만건으로, 이 중 원료 부문은 49%이며 2000년 들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 이 특허권이 아마존을 비롯한 해외생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해당 국가에 원료 사용에 따른 이익을 지급해야 한다. 원가 상승과 해외 식물 자원을 이용하는 데 제한이 뒤따르는 것이다.
나고야 의정서 바료에 따라 해외생물자원 보유국의 입장이 우위에 서면서 기존에 국내 업체가 오랜 기간 투자 개발한 식물자원 원료에 대한 특허가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상황도 예상된다. 지적재산권에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강병영 아모레퍼시픽 상무는 "실제로 일본 화장품 업체 S사가 인도네시아 해외생물자원 관련 특허 50여건을 출원하려고 했으나 당시 원주민과 국가 등이 ‘전통가치를 지적재산화하려한다’며 항의해 결국 특허 출원을 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고 설명했다.
강 상무는 또 "원료비 인상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며 새로운 식물자원 개발 의지가 급격하게 저하되고 제품값 인상으로 전 세계 화장품 소비자들의 부담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갯속 상황에 자구책 마련 적극 나서야
소비자의 관심이 환경친화적인 제품에 몰린 가운데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해외생물자원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11년 2월 프랑스·독일·영국·미국·브라질 등 5개국 소비자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88%가 화장품 기업이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식물의 원산지를 명확하게 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세계 화장품 100개 기업 중 19%이 이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현재 전체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의 16%가 천연원료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로레알의 경우 전체 원료 중 40%, 약 300개 식물종에서 유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자원을 이용한 상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업체 중 완제품 생산 기업보다 원료 수입 및 가공업체의 부담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원료업체 대부분이 나고야 의정서에 대한 인지도와 현 상황, 피해 규모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체계적인 대응 방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해외생물자원 보유국과 각 국가의 자원 리스트 등이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이어서 실태파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자본력과 자체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업체는 정부와 대기업 움직임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 중저가 브랜드숍 한 관계자는 "나고야 의정서라는 말만 들었지 실체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아직 관심이 없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한 적도 없다. 언제 발효되고 어떻게 되는 상황이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대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해외생물자원 보유국과 해당 자원 리스트, 정부 방침, 관련 정책 등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올초 정부가 해당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정도의 공청회를 열었다"며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체적인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사안의 경우 정부와 화장품협회 차원에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 상무는 "국익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와 화장품협회 차원에서 생물자원보유국들과 전략적으로 파트너십을 맺으면 해외생물자원을 이용하면서 창출한 이익을 나눌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해당 업계가 이 사안을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관련 협회가 나서서 심각성을 알리는 게 급선무"라며 "정부도 국가간 협정이나 기술 공유 등을 추진하며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업체의 연구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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