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 지난 6일 서울고검에서 항고가 기각된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를 판매한 은행들의 사기 혐의 고발사건과 관련해 담당 검사의 기소 의견이 한상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검찰총장)에 의해 묵살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동안 키코 사건의 '윗선 개입' 의혹은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검의 무혐의 처분 당시에도 일부 제기되기는 했지만, 수사를 담당했던 관련자의 '축소·은폐' 발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기업 공동대책위(공대위) 김모 위원장은 뉴스토마토 기자와 만나 "한 총장이 지난해 2월 서울지검장에 취임한 직후 간부급 임원들에게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키코사건 담당 수사팀에 '은행 다 죽일 일 있느냐. 키코 수사부터 마무리지으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8일 밝혔다.
실제로 한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하기 이전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인 2010년부터 키코 사건을 1년여 간 수사해왔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당시 이성윤 부장검사)는 은행에 대한 압수서색 영장을 청구하는 등 줄곧 '기소 의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한 지검장이 취임한 2011년 2월 이후부터 '불기소 의견'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이야기를 당시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수사팀으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키코 수사와 관련해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가 4번 정도 충돌했다고 들었다. 수뇌부와 갈등설이 불거졌던 담당 검사는 곧 교체됐다"고 설명했다.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키코 사건 축소·은폐 의혹의 단초가 된 한 지검장의 발언은 차장과 부장검사, 담당 검사들이 함께 한 지검장 첫 업무보고 회의 석상에서 난데없이 터져나왔다. 위 업무보고는 지검장이 업무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취임 직후 일주일 내에 진행하는 각 부서별 업무현황 보고를 말한다.
한 지검장이 취임한 2월1일 이후인 2~6일 사이 설 연휴를 끼어 진행된 업무보고에는 부장급 외에도 이례적으로 '키코 사건' 담당검사까지 참석했다. 현안을 수사 중인 담당검사를 배석하라는 지검장의 특별 지시가 내려지면 부장급이 아닌 검사가 업무보고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경우 차장급과 부장급만 참석하는 지검장 업무보고 회의 석상에 수사를 담당했던 일선 검사까지 배석해 현안을 설명했다는 점은 특이할만 하다.
실제로 최교일 현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직후 업무보고에서는 부장검사 이상만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담당 검사는 지검장이 참석한 첫 업무보고에서 하루 종일 키코 수사 내용과 관련된 PT(프리젠테이션)를 했다.
이 같은 업무보고 이후 당초 지난해 2월로 예정됐던 '키코 사건' 처분 결과 브리핑은 한참 뒤로 미뤄졌고, 키코 사건을 주도적으로 수사해온 박성재 검사(법무법인 민 소속 변호사)는 지난 해 5월 공판부로 전보조치 된 뒤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7월에는 키코 고발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은 무혐의로 결론내리고 수사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공대위 측은 '은행 봐주기식 수사'라며 강력 반발하며 지난해 8월 항고했지만 이 마저도 지난 6일 기각당했다.
지난해 7월 무혐의 발표 당시 법조계 일각에서는 키코 수사에 대한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의 의견 차이로 인해 박 검사가 사표를 제출하게 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으나 박 검사 본인은 부인한 바 있다.
검찰 안팎에 따르면 수사팀은 은행들이 환헤지 상품인 키코가 은행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중소기업들에 제대로 알리지 않고 불공정 계약을 체결한 혐의(사기)로 기소를 적극 검토했으나, 수뇌부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수사의 방향이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토마토는 당시 수사팀에서 키코 사건을 담당했던 박성재 변호사와 수회 접촉을 시도했으나 박 변호사는 "이미 검찰을 떠난 몸이지만 비밀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에 당시 수사상황에 대해 어느 것도 답변해 줄 수 없다"며 이 같은 의혹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박 변호사는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와의 의견 충돌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의원회의 '여의도를 점령하라' 긴급기자회견.
한편 은행과 피해 중소기업 간의 법적 공방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4년째 계속되고 있다.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의 책임 유무를 묻는 민사소송만 130여개 진행돼, 현재 기업별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키코 사건' 민사소송은 대부분 원고패소 판결이 나왔으며, 은행 측의 '설명의무' 위반 책임을 물은 원고 일부승소 판결의 경우도 피해액에 비해 배상금액은 턱없이 작은 상황이다.
공대위 측은 '윗선 개입'이나 '기업 봐주기식 수사·판결'이 아닌 '공정한 수사와 판결'을 요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소통 2012 국민 속으로' 행사가 진행된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은 필수적인데도 법원은 검찰이 요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시켰고, 검찰은 기소 의지가 강한 담당 검사마저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 두 달 전에 전보조치 했다"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이어 "법원이 나서서 금융자본의 편을 들고 중소기업에게 손실을 부담시켰다"며 "1심 민사법원은 키코 민사소송에 대해 4개 재판부가 사전회동해 한날한시에 무더기 판결을 내렸다. 상품을 설명해 주지 않은 은행은 죄가 없고, 잘 모르고 계약한 중소기업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는 게 판결의 취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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