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새해 1월 20일 77일간의 당선인 꼬리표를 떼고 마침내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취임한다.
오바마 당선인의 제44대 미 대통령 취임은 실정과 오류로 가득 찼던 부시 정권 8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에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치평론가들이 "진정한 21세기의 시작은 바로 2009년부터"라고 주장할 정도로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은 단순한 정치행사를 뛰어넘어 시대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점을 제공한다는 역사적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오바마의 취임식 행사에 역대 최대규모인 120만명의 인파가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이 같은 거창한 시대적 의미 및 엄청난 세계적 관심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오바마가 취임 당일부터 맞닥뜨려야할 녹록지 않은 국정현안이다.
지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현재진행형' 경제위기, 미군의 지속적인 희생과 전비를 요구하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연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으로 촉발된 중동위기가 그것이다.
오바마 입장에서는 나라 안팎의 중대하고도 달갑지 않은 현안에 샌드위치가 된 상태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대권을 수임하게 되는 셈이다.
이 가운데 오바마 정부 출범에 가장 부담이 되는 현안은 뭐니뭐니 해도 경제위기다. 지난 대선기간 불거진 경제위기는 오바마의 대권승리에 결정적인 원군이 됐던 게 사실이지만,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하루라도 빨리 떨쳐내고 싶은 짐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는 경제위기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당장 취임 직후 경기부양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관련 법안 마련을 친정인 민주당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또 자신의 경제고문들을 의회에 보내 경기부양법안 입안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만전의 준비를 기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측의 견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29일 오바마 당선인과 민주당이 추진중인 경기부양책이 소비성 지출을 야기할 수 있다며 입법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화당은 특히 미국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시점에 1조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경기부양책을 동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의회의 청문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새해 6일 개원하는 미 의회에서는 경기부양책을 둘러싼 여야간의 공방이 불을 뿜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가 당선인 신분으로 초당적인 경제위기 극복을 주장하며 정면돌파에 나서 취임 직후 가시적인 성과를 미국민에게 제시할지, 아니면 시간을 두고 여야의 합의도출을 이끌어내는 인내력을 발휘할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다만 오바마가 추진중인 경기부양책이 공화당의 반대로 인해 지연된다면 정권출범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그만큼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대통령 오바마의 결단력과 추진력, 리더십 등을 점검할 수 있는 시범케이스가 될 전망이다.
오바마가 하와이에서 비교적 `한가롭게' 연말 휴가를 보내는 와중에 터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충돌은 곧 탄생할 오바마 정부에 새로운 외교적 도전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오바마는 경제위기에 대해 진단을 내리고 처방전까지 제시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민감한 외교사안인 중동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대통령은 한 명"이라며 한발짝 비켜선 상태다.
측근들은 "오바마가 외교문제에 목소리를 내면 자칫 국제사회를 향해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새해 20일 이후에는 오바마가 직접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야하는 처지가 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으로 아랍국가들의 원성이 드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과연 오바마가 미국의 전통적인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밀고나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오바마도 물론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입장을 줄곧 거들어온 쪽이지만, 지나치게 이스라엘에 기우는 언행을 보인다면 아랍전체의 반감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는 지난 대선기간 "이란이 이스라엘에 핵공격을 가한다면 보복차원에서 이란을 완전히 없애버릴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극단적인 친이스라엘 노선을 보였다는 점에서 국무장관 취임후 첫 과제로 중동문제를 원만하게 중재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갑자기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로 뛰어오른 중동문제를 오바마가 경제위기 극복노력 속에서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지는 오바마 정권초기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 2개의 전쟁을 관리하고, 순차적으로 매듭짓는 일도 오바마 정부 초기에 맡겨진 쉽지 않은 과제다.
오바마는 공화당 정부에서 일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키는 파격 인선을 통해 정권이양기와 경제위기 속에서 두 개의 전쟁을 관리하도록 일임했다.
이와 동시에 오바마는 지금까지 공언해온 대로 취임 직후 게이츠 장관과 군수뇌부를 불러 이라크 철군계획 및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병력증강 등의 계획을 마련해 오도록 지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에서는 가급적 정권출범후 1년6개월-2년 사이에 주둔미군을 철수시키고, 테러의 주전선을 아프간으로 이동하는 계획이 곧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는 한국 등 우방에 대해 아프간 전쟁수행에 필요한 지원요청에 직접 나설 가능성이 있다.
경제호황 속에서 외교문제에 정권의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민주당 빌 클린턴 정권과 달리 오바마 새 정권은 경제위기 극복이 급선무라는 점에서 대외.군사정책도 정권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난제로 꼽히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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